왜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가?
기획아카이브 / by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 작성일 : 2024.11.26 / 수정일 : 2024.11.26
왜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가?
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소장)
18세 이상의 근로가 가능한 사람들은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다. 부모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잉여인간 군(群)은 일단 예외로 하자. 보통 사람이라면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 대가로 받은 임금 소득이 생계의 원천이다. 자영업자는 스스로를 고용한 것이니 최종적으로 자기 손에 쥐는 순수익이 임금에 해당한다.
실업자는 소득을 얻을 기회조차 못 가졌으니, 빈곤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가난하다면? 그건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득이 너무 적거나 불안정해서다. 이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 한다. 그리고 이때 빈곤의 원인은 일자리, 즉 노동시장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개 근로 빈곤의 주된 원인은 근로 시간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당 임금 소득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이병희, 2010) 이병희(2010)1). 한 마디로, 일은 하는데 ‘나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일자리’란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임금수준이 아주 낮거나, 오래 일할 수 없는 한시적 일자리이거나, 사회보험 가입이 안 돼 있거나, 노동조합이 없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나쁜 일자리’로 갈 수밖에 없을까? 보통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이란 완전경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가정된다. 노동시장 역시 원론적으로는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장(場)에서 서로서로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완전경쟁의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동력 간의 질적 차이나 제도의 문제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의 완전 대체나 노동시장 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령,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반도체 만드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노동시장은 하나의 장이 아니라 둘 내지 세 개의 마디로 나뉘어져 있고(즉, 분절돼 있고) 그들 간에는 교류나 이동이 어렵다는 ‘분절노동시장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의 근로자로 구성돼 있는 것이 1차 노동시장이라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저임금의 근로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2차 노동시장이다. 대기업에도 비정규직이 있고 중소기업 중에도 좋은 근로조건의 회사가 있을 수 있지만,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1차 노동시장은 ‘좋은 일자리’ 시장이고 2차 노동시장은 상대적으로 ‘나쁜 일자리’ 시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자리의 ‘좋고 나쁨’의 정도 차이가 워낙 큰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평균적 임금 격차는 월 174만 8천 원으로, 7년째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아래 <그림 2>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임금을 100이라 했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 근로자는 57.6,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는 절반도 안 되는 44.1만큼의 임금을 받는다. 한 나라의 임금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 10분위 배율’―임금수준 최상위 10%의 평균임금이 최하위 10% 평균임금의 몇 배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을 보면, 우리나라는 4.70로 오이시디(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5.08), 칠레(4.72) 등과 함께 최정상을 다투고 있다.
그림 1: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 [출처: 국가지표체계(2023)]
그림 2: “300인 이상 정규직 시간당 임금 대비 상대수준” [출처: 고용노동부(2023)]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전체 임금 근로자 중 정규직 근로자가 줄어드는 대신 비정규직의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계약직(기간제)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파견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사내하도급 노동자 등을 말한다.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38.2%에 달한다.
근로조건이 좋은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구직자들의 경쟁은 자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고, 특히 청년층의 경우는 1차 노동시장의 좋은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구직활동 기간을 늘이거나 취업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에 2차 노동시장에서는 취업 기피 현상이 일어나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는 일까지 벌어진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차 노동시장의 근로자가 1차 노동시장으로 상향 이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기존 연구들에 의하면 중소기업-정규직에서 대기업-정규직으로 옮겨가는 비중은 약 4%(이태 외, 2023)2),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샹향 이동 확률은 채 1%도 안 된다(이효수, 2002)3)는 분석 결과가 나와 있다. 전체 임금 근로자 가운데 중소기업 취업자가 88%, 대기업 취업자가 12%인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금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의 일자리는 그 규모가 극히 작을 뿐 아니라 2차 노동시장에서 진입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분절화 정도는 매우 심하다.
이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소득의 불평등과 고용의 불안정을 가져와 결국 일을 하면서도 빈곤할 수밖에 없는 근로빈곤층의 확산을 낳는다. 따라서 분절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대안적인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 물론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잠재적인 유권자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선거 딜레마를 가진”(Emmenegger et al, 2012: 전병유, 2018에서 재인용)4)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임금 10분위 배율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 칠레는 2000년 그 수치가 6.3배였다.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우리나라가 게을리하는 동안 칠레 정부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현재의 4.7배 수준까지 낮춤으로써 우리 곁에 바짝 따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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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로빈곤의 노동시장 요인과 빈곤 동학”, <경제발전연구>, 16(1)
2) 이태&안준홍(2023), “한국의 분절된 노동시장과 노동이동 분석”, KLI패널 워킹페이퍼, 2(2)
3) 이효수(2002), “노동시장 환경변화와 노동시장의 구조변동”, <경제학연구>, 50(1)
4) 전병유(2018), “우리나라 노동시장 분절화의 구조와 시사점” <월간 노동리뷰>,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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