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활동가들이 사업을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NPO스쿨의 이재현 대표가 ‘활동가의 사업기획 ABC’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연재 목차]
(1) 공익활동가를 위한 사업기획의 기초
- 공익적 관점으로 구상하는 사업기획
- 기획서, 계획서, 제안서의 차이
- 좋은 사업기획, 나쁜 사업기획
(2) 단체의 미션·비전과 사업의 연결
- 단체의 미션·비전을 연결해야 하는 이유
- 미션·비전과 사업의 브릿지, 전략목표
- 공익활동을 기획한다는 진짜 의미
(3) 명분과 타당성을 부여하는 분석 기법
- 기획서를 돋보이게 만드는 분석 기법
- 사업포트폴리오 분석 방법과 도구
- 개별사업 분석 방법과 도구
(4) 활력있는 사업의 실행과 평가
- Plan-Do-Check의 순환고리의 비밀
- 성과관리 이론과 성과평가 이론 비교
- 논리체인으로 적용하는 평가측정의 실제
(5) 결과보고서 작성법과 사례
- 좋은 보고서는 좋은 기획서로부터
- 설득력 있는 기획서 및 보고서 작성법
- 실무에 바로 적용가능한 보고서 탬플릿
(1) 공익활동가를 위한 사업기획의 기초
비영리(non-profit)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벗어나기 위한 대체어로 공익이 대두되었습니다. 공익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다는 공익(共益, public benefit)과 불특정 타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공익(公益, public interest)으로 세분화되지만 결국 지향점은 공공선(common good)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근로자의 속성을 갖지만 동시에 공의로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정한 동의 위에 노동이 성립되니 활동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다루려고 하는 공익활동가의 사업기획은, 이러한 공익활동을 사업이라는 보편적인 사회의 그릇 속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익이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요? 막연하고 맹목적인 선함이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비영리라는 개념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L Salamon). 그러니 비영리와 공익은 유사어이고, 이 둘의 반대어는 사익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루려는 공익활동의 사업기획이란, 누군가에게 유익함을 제공하며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실천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이란 누군가의 pain point를 happy point로 변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익활동 기획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문제의식 위에 시작되고 이는 다시 문제정의로 도출되는 흐름을 갖습니다. 즉 기획을 시작하는 질문은 ‘왜 변화가 필요한가’가 적당합니다. ‘왜’에 대한 대답은 적합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가령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가 가능하겠지요. 답이 되었다면 그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가 적당할 것이고, 이어서 ‘그것을 위해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등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입니다.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보편적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존재론 차원의 큰 질문은 방법론 차원의 작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전개는 우리가 어떠한 주제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해가는 과정과 일치합니다. 기획 과정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법칙이기도 합니다.
기획서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인간의 의식 흐름에 맞추어 기술한 구조화된 문서입니다. 어느 기관의 기획문서를 보더라도 이 법칙은 대동소이합니다. 제기 배경과 취지로 시작한 후 목적이나 목표로 이어져 프로그램과 관련 실무로 전개가 되니까요. 이 전개의 질서는 앞서 설명한 의식의 흐름을 닮아있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인과적 관계에 기초한 개연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앞단이 전제되어야 뒷단을 기술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지요. 제기배경과 취지가 정의되었기 때문에 목적이나 목표라는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이고, 방향성이 설정되었기에 그에 적합한 프로그램으로 실천을 전개하겠다고 서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기획서를 구성하는 목차 상호 간의 연관성을 강화하면 기획서의 설득력은 배가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어도 남는 게 없는 문서가 되기 쉽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기획서와 계획서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기획이라는 한자어는 planning을 번역한 결과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계획은 plan을 번역한 결과이구요. plan에 ing를 붙이면 진행 중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계획이란 기획의 결과가 되고 기획이란 계획의 사전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즉 기획이 먼저고 계획이 나중입니다. 기획이 구상이라면 계획은 구조입니다. 기획이 상상의 범주라면 계획은 실행의 언어입니다. 이러한 질서는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선사합니다. 가령, 좋은 계획을 수립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기획과정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혹은 계획이라는 결과물의 설득력은 기획이라는 미완의 과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계획서를 완성하기 위해 작년에 진행되었던 사업 평가회를 개최하거나 욕구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획회의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차는 좋은 계획서를 수립하기 위한 사전 기획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획이라는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 계획이라는 결과물에 흔쾌히 동의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획서와 보고서의 관계>
<이미지 출처> 건강한 비영리경영, 이재현, 한국문화사, 2024
이러한 관점을 문서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획서란 큰 방향과 구상을 담아낸 과정적 문서에 가깝고, 계획서란 최종적으로 확정된 기획의 요소를 실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한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볼까요? 기획은 전략기획이란 파생어가 있고 계획은 실행계획이란 파생어가 있습니다. 전략기획(strategic planning)은 조직의 목표를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렬하는 전사 차원의 과정입니다. 실행계획(action plan)은 사업의 목표를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렬하는 부서 차원의 결과입니다. 이렇듯 기획과 계획은 조직의 전반적인 경영 차원에서 알게 모르게 적용되어온 다재다능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환기 차원에서 주제를 확장해 보겠습니다. 어떤 의제에 대해 기획과 계획이 완료되었다면 자원의 확보를 위해 이를 외연화하기도 하는데, 이때 상대방의 욕구를 분석하여 일정한 거래까지 의도하는 문서를 제안서(proposal)라 합니다. 정돈된 기획과 계획의 내용을 상대의 욕구에 맞춰 제안하는 목적을 가진 문서입니다. 기획서와 계획서 모두 어떤 목표를 위한 우선순위를 정리해 놓은 문서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제안서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제시함으로써 행동의 적극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시중에 유행하는 ‘거절당하지 않는 프로포절 꿀팁’, ‘100% 성공하는 프로포절 탬플릿’같은 교육을 듣고도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기획과 계획을 먼저 튼실하게 수립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제안하고자 하는 내용의 충실성이 밑바탕입니다. 형식이란 본질을 전달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기획서, 계획서, 보고서>
<이미지 출처> 건강한 비영리경영, 이재현, 한국문화사, 2024
끝으로 살펴볼 것은 과연 좋은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마다 보이는 편향이 꽤 다채롭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강조합니다. 누군가는 표와 편집에 신경쓰며 시각적으로 끌리는 문서를 추구합니다. 누군가는 내용에 대한 고심보다 형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과연 좋은 기획이란 무엇일까요? 오늘의 강조점에 의하면 좋은 기획이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그와 관련된 일련의 과업을 인과적으로 구성한 체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익은 추상이며 비가시적인 개념이라 오로지 설득가능한 방법은 논리적 개연성에 기초한 체계성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음미해 봅니다. 공익이란 결국 무엇인가요? 사회문제가 없다면 공익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공의로운 의지를 담은 실천이 공익활동입니다. 그렇다면 공익활동을 기획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도록 이에 필요한 실천을 정리하는 종합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을 표준화된 용어인 사업이라 부르고 있기에 사업기획이라는 말이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글쓴이 소개>
이재현
비영리 현장의 건강성을 위해 함께하는 NPO스쿨의 대표
전략기획, 조직문화, 자원개발 등 비영리경영 전문가
「건강한 비영리경영」 등 출판저서 5권 단독집필
강의 2천회 이상, 컨설팅 200개 기관 이상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