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전국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들이 펼쳐집니다. 미술관에서부터 브랜드 팝업, 공공기관 기획전까지 다양합니다. 관람객에게는 ‘짧은 순간의 체험’으로 남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적잖이 방관해 온 폐기물과 자원 낭비의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다만, 전시는 본질적으로 공간을 만들고 연출하는 일입니다. 벽을 세우고, 가벽을 설치하고, 조명과 플랫폼을 마련하고, 인쇄물과 홍보물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대부분 단기간 사용 후 폐기물로 전환되는 자원입니다. 나무, 목재, 석고보드, 페인트, 시트지, 현수막 등 – 그 자재들은 전시가 끝난 뒤 철거되어 버려집니다.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자재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내 보도에 따르면, 일반적인 중대형 전시 한 건에서 약 5톤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형 전시일 경우엔 10톤 이상도 가능합니다. 이 수치는 단순히 쓰레기의 숫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운영 구조가 얼마나 ‘일회적 소비’ 형태로 설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 그리고 최근에는 친환경을 표방한 전시가 많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시 자체가 환경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쇄물, 일회성 구조물, 운송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전시 제작에서 운송하는 작품·자재가 비행기로 이동할 경우 상당한 탄소가 배출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지 않을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영리단체, 마케팅 기획자, 문화 기획자라면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친환경 전시는 단순한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운영비 절감·브랜드 신뢰 제고·지속가능한 콘텐츠 기획이라는 복합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자재 사용, 재사용 구조 설계, 디지털 해설 도입, 장비 렌탈 등은 초기에는 추가 설계 노력과 예산이 더 투입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과 이미지 강화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친환경 전시’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비영리·마케팅 기획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세 가지를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하나의 아이디어에는 개그우먼 송은이가 주인공인 ‘쪽잠(즉, 잠깐의 휴식) 전시’를 포함해, 콘텐츠·기록·재활용이 만나는 방향까지 담아보았습니다.
친환경적인 전시를 시도한 사례 3가지
사례 ① 국립현대미술관 (MMCA) / 《미술관-탄소-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부터 전시 제작의 탄소배출량 산정 및 감축을 시도했습니다. 기존에는 작품 설치·철거·운송 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비용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던 구조였습니다. 전시 전 과정(작품 제작, 통근·출장, 운송·설치·철거, 폐기물 처리 등)을 항목별로 탄소배출량을 계량화하고 시민·디자이너 워크숍을 통해 “미술관이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이라는 설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전시 자재 선정에 있어서 ‘재활용 가능’ 혹은 ‘재사용 가능’ 자재를 우선시하고, 운송 경로 조정(국내 제작 확대) 등을 논의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전시 제작 시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구조가 도입되었습니다. 내부 가이드라인 마련 및 전시 기획 시 친환경 측면이 고려되는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전시마다 완전히 친환경화된 운영이 정착되었다고 보기엔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에서의 시도는 관련 업체에 울림과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보여줄까?”와 함께 “이 전시를 만드는 데 어떤 자원이 쓰이고 폐기될까?”를 질문하는 것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례 ② 부산현대미술관 /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2021년부터 이 미술관은 전시 제작 구조 자체를 바꾸어, 폐기물과 자원 사용을 감축하려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전시 설치 시 기존의 석고보드 가벽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형 모듈 벽체를 도입했습니다. 페인트·시트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인쇄물 또한 이면지를 활용하거나 QR코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전시 종료 후 남은 구조물(가벽·좌대 등)을 전시장 한편에 적재하여 폐기물이 된 자재가 새로운 전시 오브제가 되는 구조로 전환하였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폐기물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 전시 뒤편에 남는 구조물과 폐기물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전시 뒤의 이야기’라는 인식을 끌어내며 2차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운영 비용 측면에서도 재사용 가능한 자재 활용으로 절감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전시의 ‘물성(가벽·좌대·플랫폼 등)’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친환경 전시의 핵심입니다. 비영리 기획자라면 구조물 설계 시부터 재활용 가능성·철거 후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례 ③ 서울시립미술관 /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이 전시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개념을 전시 구조 전체에 도입했던 대표적인 실천 사례로,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 기획 영역에서도 참고되는 모델입니다. 전시 벽체·좌대 등의 구조물을 이전 전시에서 사용했던 자재(재활용 목재 등)를 그대로 재활용과 액자나 가구 등 전시 보조물은 중고품 또는 업사이클링 자재를 우선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인쇄물 제작을 최소화하고 안내는 QR코드, 모바일 해설 중심으로 전환하여 잉크 사용량을 60% 이상 줄인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에너지도 또한 고려되려 조명·냉난방 사용량을 줄이는 설계가 병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적 완성도와 친환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디자인 어워드 수상 등의 외적 성과가 나왔으며, 이후 여러 전시에서 벤치마킹 지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모든 전시로 확산되기에는 아직 자원·예산·운영 인력 측면에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친환경’이 단지 메시지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전시 기획 초기부터 친환경 체크리스트를 설계하고, 실제 실행 가능하도록 프로세스화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 제안 3가지
위 사례들을 참고해, 비영리 조직·마케팅 실무자들이 적용해 볼만한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 세 가지를 제시해 봅니다.
아이디어 1. ‘전시 뒤의 전시’ – 철거물을 예술로 다시 보기
전시가 끝난 뒤 버려지는 구조물 자체를 다음 전시의 소재이자 작품으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즉, ‘전시 뒤에 무엇이 남는가?’를 주제로 삼아, 철거 자재가 곧 새로운 전시 오브제가 됩니다. 전시 시작 단계에서 구조물·자재에 대한 ‘재사용 가능성’을 조사하고, 폐기물량·탄소배출량 예상치와 목표치를 관람객에게 공개합니다. 또한, 가벽·플랫폼·액자 등을 재사용 가능한 모듈형으로 설계하고, 해체 후 즉시 ‘재조립 워크숍’ 형태로 시민·학생·작가가 참여하도록 구성합니다. 그리고 철거 후 남은 구조물이나 폐자재는 지역 학교, 커뮤니티센터 등에 기부하거나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으로 이어집니다. 거기에 전시 홍보물·현수막·팝업물 등은 디지털 대체 수단으로 전환하거나 대여 소재 활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이 철거 자재를 직접 보고 만져보는 참여형 코너를 마련한다면 “이 구조물 다음엔 어떻게 사용될까?”라는 질문을 참가자에게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전시 관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전시 뒤편의 현실까지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 됩니다. 또한 비영리나 문화마케팅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운영’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어 공익성과 메시지성이 강화됩니다. 자재 재사용으로 구조물 제작비용이 절감되며, 철거·폐기물 처리 비용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디어 2 ‘렌트 서클’ 프로젝트 – 지역 전시 장비 공유 플랫폼
현실적으로 구성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안해 보고 싶은 것이 공유 플랫폼입니다. 전시 제작 시 매번 새로운 가벽·액자·조명·좌대 등을 구매하는 대신, 지역 내 전시 장비를 대여(렌트)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기획합니다. 이를 통해 일회성 사용 자재가 반복 사용되는 순환구조로 바뀝니다. 지역의 전시장비(가벽, 액자, 조명, 좌대 등)를 등록하고 대여·반납을 관리하는 공유센터 구축하여 전시 종료 후 구조물 해체→점검→보관→다음 전시 대여 프로세스를 설계하여 재사용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대여 이력을 기반으로 ‘탄소감축 리포트’를 발행하고, 전시 기획 시 친환경 성과를 수치화하여 홍보자료로 활용하며 온라인 전시 버전도 병행하여, 관람객 이동을 줄이고 온라인에서 콘텐츠로 접할 수 있게 설계. 이로써 관람객 이동·교통으로 인한 탄소배출도 일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케팅 및 협업 측면에서 ‘지역 순환경제’ 모델과 결합할 수 있고, 비영리 기관·지자체·사회적 기업 간 네트워크가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초기 제작비를 절감하고, 구조물 폐기물과 관련된 리스크를 낮출 수 있습니다. 물리 전시와 온라인 전시 병행을 통해 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면서도 친환경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내 협업 기반이 강화되면 기관·단체·브랜드 이미지 모두 긍정적 영향을 받습니다.
마무리하며 - 남기지 않는 전시, 기억되는 전시
친환경 전시는 이제 단지 ‘환경을 주제로 삼는 전시’가 아닙니다. 전시장의 벽 하나, 액자 하나, 리플렛 한 장마저도 환경 영향을 담는 변수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위에 소개한 국내 사례들은 그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었고, 제안한 아이디어들은 기획자들이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담았습니다.
1) 운영 방식의 메시지화: 전시의 내용만큼이나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운영했는가’가 메시지가 됩니다.
2) 관객 참여와 공감 확장: 전시 구조나 자재, 폐기물 등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지속가능성의 반복구조화: 한 번 실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사용‧대여‧디지털 병행’ 구조를 조직화해야 비용·자원 낭비가 줄고 메시지도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정보 출처
1. 한국경제, 〈“전시 한 건에 5톤 쓰레기”… 친환경 전시 도입 움직임〉, 2025.03.16.
링크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31670721
2.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다원예술 2022: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전시 페이지, 2022.
링크 :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3&exhId=202205090001509
3. 월간미술 (Monthly Art), 〈한국 미술계는 어디까지 왔나: 탄소중립과 예술〉, 2023. 3호.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ED%95%9C%EA%B5%AD-%EB%AF%B8%EC%88%A0%EA%B3%84%EB%8A%94-%EC%96%B4%EB%94%94%EA%B9%8C%EC%A7%80-%EC%99%94%EB%82%98
4. 부산현대미술관 공식 페이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2021.
링크 : https://www.busan.go.kr/nbtnewsBU/1487345
5. 한겨레신문, 〈부산현대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의 뒷모습을 드러내다〉, 2024.07.19.
링크 :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116508.html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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