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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사례

[변화사례 아카이브 #03] 침묵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작성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등록일 2026-10-08 조회수 1670
활동직무 조직운영 활동분야 성평등
자료출처 기관/단체 자료형태 기타

 

아무도 세지 않았던 순간들


22.5시간마다 1명.
무슨 숫자일까요? 여성이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뻔한 간격입니다. 2025년 한 해,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된 여성 137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이들까지 더하면 389명이죠. 여기에 스토킹,캣콜링*, 불법촬영, 강간까지 더하면, 여성이 일상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일은 셀 수 없이 흔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왜 남자를 가해자 취급해?”
“왜 저렇게 유난이야?”


페미니즘 프로젝트 그룹 셰도우핀즈는 이게 ‘유난’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흩어진 폭력의 흔적을 지도 위에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한 겁니다. 게임을 만들고, 법을 두드리고, 소송을 따라 붙었습니다. 그 10년의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캣콜링 :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성적인 의미를 담아 휘파람을 불거나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행위

 

숫자가 없는 문제


“불법촬영 카메라를 봤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 
“캣콜링을 당했다.”


이런 이야기,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꽤 자주 오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계로는 잘 안 잡힙니다. 왜일까요? 증거로 남기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그 정도 일로 유난 떤다”는 시선에 스스로 표현을 검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인의 경험으로 흩어진 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위험은, 없는 일 취급받으니까요. 매일 누군가는 겪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이 이상한 공백. 셰도우핀즈는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법여성학을 공부한 사람들


셰도우핀즈는 사법시스템 내 여성의 지위가 왜이렇게 낮은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 움직여온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사법시스템이 남녀에게 모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여성이 소외당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죠. 셰도우 핀즈의 시도는 2018년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된 북클럽 자료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단체 발간자료와 논문, 미국 판례, 국내 판결문까지 647쪽에 달하는 자료를 함께 읽는 모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스터디를 통해 이들이 얻은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법조계 전반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 

 

 

이에 셰도우핀즈는 책상 앞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성범죄 재판을 직접 방청하고,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20년에는 한 스타트업의 갑질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때도 셰도우핀즈는  무죄 탄원 서명을 모으고, 언론사에 피해자를 대리해서 굿로이어스의 양태정 변호사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피해자를 다시 한번 피해자로 소비하지 않는 법을, 이들은 직접 만들어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대중 대상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법조계 전문가와 피해자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방식이었죠. 
 

게임과 웹사이트, 그리고 지도


셰도우핀즈의 접근법은 파격적이고, 과감합니다. 한 예로, 2021년에는 60년간 바뀌지 않은 강간죄 법령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이상한 나라의 강간죄'.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활동가, IT 커뮤니티 널채움과의 협업으로 이 게임은 세상에 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2023년에는 성적 동의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개념을, 카드게임 '적극적 합의를 도와줘'로 풀어냈습니다. 이 두번째 게임은 셰도우핀즈에 널채움의 소개로 추가합류하게 된 여성 개발자들, 다시 한번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들과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딱딱한 법 조항을 게임 규칙으로 바꿔놓으니, 누구나 부담 없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죠. 

 

 

2020년에는 20년째 국회에 잠들어 있던 스토킹처벌법 문제를 알리기 위해, 관련 범죄 기사를 죄다 크롤링해서 시각화한 '크롤앤스티치' 캠페인을 열었습니다. 당시 테오즈 활동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숨은 정쟁거리가 아니다.”


국회의 늑장 처리를 향한 일침이었죠. 2021년과 2024년, 두 번의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강간죄 개정 입장을 직접 묻는 웹사이트 '콜21'과 '콜22nd'를 각각 운영했습니다. '콜22nd'는 개발자 그룹 '널채움', '강간죄개정연대회의'와 손잡은 협업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게임으로, 웹사이트로, 캠페인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실험들이 마침내 하나로 모인 지점, 그게 바로 'K-다크맵 투어'입니다. 2024년 3월 빅데이터 해커톤에서 첫 시제품이 나왔고, 이후 다섯 차례가 넘는 운영을 거쳐 2025년 7월 정식 오픈했는데요. 성기 노출, 불법촬영, 스토킹 같은 폭력 사건을 인터넷 뉴스 기사를 기반으로 지도 위에 시각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에 커뮤니티 워크숍까지 더해, 지도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일상적인 불안과 피해 경험을 나누는 자리도 함께 열고 있습니다.

 

여러 번 실패해도 되는 실험


페미니즘에 대한 활동은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셰도우핀즈의 활동은 지속적이고 가시적입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하나, 이들은 한 가지 방식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게임, 웹사이트, 캠페인, 아카이빙까지.  형식을 바꿔가며 같은 문제의식을 실험해왔습니다. 앞선 프로젝트에서 남긴 시행착오는 다음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시도들이 차곡차곡 쌓여, K-다크맵이라는 한 단계 다른 완성도의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게임을 캠페인 방법에 적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성취는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넓히고, ‘서명운동’ 혹은 ‘지역 국회의원에게 메일 발송’ 이라는 직접 행동에 대한 결과를 수치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상한나라의 강간죄’ 같은 경우 3만 9천 626건의 서명 인원을 현재까지 모았고 콜21은 발송 메일 16만7천여건, 콜22는 2만건 메일발송의 성취가 있었습니다


둘, 오픈소스 기술과 법여성학이라는, 언뜻 봐서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영역을 결합했다는 점입니다. 법과 판례를 파고들던 사람들이 동시에 데이터와 지도까지 다룰 줄 알았다는 것. 흔히 보는 조합은 아니죠. 그 덕분에 머릿속 문제의식을 눈에 보이는 서비스로 곧장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동시에 갖춘 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흩어진 순간들이 지도가 되다


2025년 7월 정식 오픈한 K-다크맵 투어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넘게 운영되며, 여성들이 겪어온 길거리 폭력의 현장을 하나둘 지도 위에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각자의 '길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당했던 불쾌하면서도 황당한 사건의 기억들을 한 화면 안에 모아, 흩어져 있던 경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패턴으로 바꿔놓는 것이죠.

 

 

성과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2025년 9월에는 지리산포럼에서 이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2026년 6월 8일에는 아시아태평양 기술 인권 컨퍼런스 '드랙팩(DRACPAC) 2026'의 워크숍 세션 무대에도 오픈넷과 공동 사회로 섰습니다. 시민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국제 무대까지 가닿은, 꽤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비정기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것


셰도우핀즈는 스스로를 '비정기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소개합니다. 시즌을 나눠가며 활동을 이어왔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휴식기'라는 이름의 공백기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소수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조직 형태나 상근 인력 없이 시즌제로 굴러가는 방식은, 유연하다는 장점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이라는 숙제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 다른 문제로


그럼에도 셰도우핀즈의 확산 경험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줍니다. 예를 들어 K-다크맵 투어가 보여준 방식을 모방해볼 수 있죠. 흩어진 개인의 경험을 데이터로 모으고, 지도라는 직관적인 형태로 시각화하는 것. 이 방식은 스토킹, 캣콜링, 여성 대상 폭력이라는 의제를 넘어 다른 사회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실제로 이 팀은 g0v, Code for Japan 과 국제적으로 협업하며 동아시아의 여성사를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한 영역에서 얻은 방법론을 다른 지역과 의제로 확장해온 이력이 있습니다. K-다크맵 역시 앞으로 다른 도시, 다른 형태의 폭력 데이터로 계속 뻗어나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흩어진 순간들을 모으는 이 작업은,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단체 소개]   


셰도우핀즈는 법여성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정기 페미니즘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2016년 결성 이후 게임, 웹사이트, 카드게임, 아카이빙 등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 프로젝트로 사법시스템 내 여성 피해자의 권리향상을 돕고, 안전한 사회망을 만드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주요 연혁]   

시기

주요 내용

2016.2.22

법여성학 기반 페미니즘 프로젝트 그룹 셰도우핀즈 결성

2018.

아홉 달간 북클럽 운영, 법여성학·판례 자료 647쪽 스터디

2020.12.1

스토킹처벌법 제정 촉구 캠페인 '크롤앤스티치' 오픈

2021.3.8

강간죄 개정 캠페인 웹사이트 '콜21' 오픈

2024.3.9

K-다크맵 투어 빅데이터 해커톤 1회차 개최 (로컬스티치 홍대)

2024.4.2

강간죄 개정 캠페인 '콜22nd' 오픈

2024.12.6

브라이언임팩트 스파크트랙 지원금으로 K-다크맵 커뮤니티 기능 개발

2025.7.7

'K-다크맵 투어' 공식 오픈

2025.9.27

지리산포럼 2025 참석, '변화를 만드는 지도' 발표

2026.6.8

아시아태평양 국제 기술X인권 컨퍼런스 ‘DRACPAC 2026’ 워크숍 세션 운영  -Dark Map, Turning on the Light - The Pins We Take Together


[관련 정보]   


weareshadowpins.com (셰도우핀즈 공식 홈페이지)
kdark.weareshadowpins.com (K-다크맵 투어)

#K다크맵투어 #길거리괴롭힘 #페미니즘프로젝트 #법여성학 #시민데이터

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셰도우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