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이 하나 남아서
2018년 여름,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연립주택. 대학 복학을 앞둔 유하영, 김예빈 두 사람은 쓰리룸 빌라를 구해 방 한 칸씩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남은 방 하나는 어떻게 할까?"
“나그네를 위한 방으로 하면 어때?”
그렇게 시작된 나그네방은 용산과 성북동을 거쳐, 지금은 서울과 경상북도 안동 두 도시에 있습니다. 8년간 이 방을 거쳐 간 내외국인은 50여 명, 입주자의 자발적 독립 전환율은 100%입니다.

지갑이 다 닳기 전에
2023년 기준 서울 청년 1인 가구는 소득의 약 35.4%를 주거비로 지출합니다. UN이 권고하는 적정 주거비 기준인 소득의 30%를 이미 넘어선 수치입니다. 서울 평균 월세는 60만 원, 보증금은 1,000만 원을 넘습니다. 이는 소득이 불안정한 사회초년생에게는 특히 큰 부담입니다. 최근에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 문화가 퍼지면서, 사회초년생이 평생 벌어들일 소득의 현재가치가 약 1억 원 줄어들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공정책은 이를 모두 보완해주지 않습니다.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가구의 자가점유율은 12.2%로 전년보다 2.4%p 낮아졌고,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 비율은 8.2%로 오히려 2.1%p 올랐습니다.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청년 비율도 17.9%에 달합니다.
이 불안은 다시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주거 문제를 겪는 청년 가구는 약 69만 가구로 추정되고, 이 중 56%가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고립·은둔을 경험했거나 그 위험에 놓인 청년은 최대 약 54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3.7점으로, 전체 청년 평균(6.7점)의 절반 수준입니다.
방이 하나 남아서
유하영, 김예빈 두 사람은 대학 시절 함께 선교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복학을 앞둔 어느 날, 김예빈 씨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교 훈련을 받았으면 선교사인데, 선교를 해야 되는 것 아니야?"
다만 꼭 멀리 떠나야만 선교인 것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2018년 여름, 대학 복학을 앞둔 두 사람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오래된 연립주택을 구했습니다. 방 한 칸씩 나눠 쓰기로 한 뒤 남은 방 하나를 두고 생각했습니다.
‘이 방은 우리 것이 아닌 것 같다. 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자.’
그 생각이 나그네방의 출발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2019년, 유하영 씨에게는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정보와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을 하고 싶어 유튜브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는, 임팩트투자사 옐로우독 제현주 대표를 인터뷰하며 비즈니스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그 질문의 끝에서 다시 만난 주제가 바로 자신이 이미 붙들고 있던 '주거 문제'였습니다. 이후 그는 주거 브랜드 맹그로브에서 호텔 매니저,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며 현장 감각을 쌓았고, 2025년 10월에는 나그네방과 새로운 공간 '코이노니아'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나그네방의 유일한 규칙
나그네방에는 계약서도 보증금도 없습니다. 대신 운영자가 집의 보증금과 월세를 전액 부담하고, 입주자는 자기 수입의 10%를 냅니다. 수입이 없는 경우엔 최소 책임비 20만 원만 내면 됩니다. 책임비를 현금으로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요리, 청소, 디자인, 번역, 교육처럼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재능으로 대신하는 '재능 책임비' 제도도 있습니다. 강제 퇴실도 없습니다. 입주자가 스스로 "이제 독립하겠다"고 말할 때 떠나는 게 원칙입니다.

2018년 오류동에서 시작한 나그네방은 여러 차례 이사를 거쳐 24년 말 성북동의 네 번째 집에 자리잡으며 방 한 칸에서 세 칸으로 확장했습니다. 그 사이 2022년 국내 거주 외국인을 입주지로 받기 시작하며, 내국인의 주거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경험하는 주거 문제의 실상도 알게 됩니다. 안정적인 나그네방 운영 구조를 고민하던 이들은 25년 11월, 스테이 공간과 지역 교류 공간을 겸한 ‘코이노니아’를 경상북도 안동에 오픈하며 도심을 벗어난 나그네방, 영리 공간이 비영리 공간을 지탱하는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안동의 스테이 공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서울의 나그네방 운영비를 충당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음, 그리고 순환
나그네방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조건 없음'입니다. 소득 기준이나 서류 심사 없이, 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대로 내어주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그네방은 떠남을 준비하는 곳이지,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다"라는 원칙입니다. 나그네방은 정착지가 아니라 자립을 준비하는 동안 잠시 머무는 곳으로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떠난다는 소식은 아쉬움이 아니라 축하할 일로 여겨지고, 7년간 자발적 독립 전환율 100%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갈등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유하영 씨는 함께 살며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을 "드디어 너와 내가 섞이고 있다는 신호"라고 여긴다고 말합니다.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무작정 참기보다, 각자 자신의 행복을 먼저 챙기라고 권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의 행복도 보듬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50명, 그리고 100%
8년간 나그네방을 거쳐 간 사람은 내외국인 40여 명, 입주자가 스스로 독립을 결정한 비율은 100%입니다. 지금은 세 개 방이 모두 찬 상태에서 입주 문의가 계속 있습니다.
1년 8개월을 머물렀던 한 나그네는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다가갈 줄 모르는 저에게 매일 안부를 물어봐 주고 끼니와 마음 상태를 체크해주는 나그네방 친구들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어요."

가장 오래 머물렀던 나그네가 떠나며 남긴 손편지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하영 씨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앞으로는 제가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살겠다."
방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된 셈입니다.
개인의 헌신에 기대지 않기 위해
나그네방은 지금까지 운영자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돼왔습니다. 그런데 입주 수요가 계속 늘고 후원자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두 가지 한계가 분명해졌습니다. 첫째, 개인 운영 구조로는 더 많은 청년을 품을 수 없습니다. 둘째, 후원자에게 공식적인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는 법인격이 없어, 신뢰에 기반한 재정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방은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비영리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7년간 개인 운영으로 검증된 방식을, 이제는 한 사람의 헌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누는 구조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그리고 5년
나그네방은 검증된 개인 운영 모델을 법인 체계로 구조화하는 5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2026년에는 법인을 설립하고 성북동 나그네방을 첫 번째 공식 거점으로 전환하며, 후원자 30인을 모으고 기부금 영수증 발급을 시작합니다. 2027년에는 남성 청년을 위한 서울 2호점을 엽니다. 2028년에는 그동안의 운영 방식을 매뉴얼로 정리해 자립 전환 사례 10건 이상을 기록하고, 2029년에는 3호점 개소와 함께 외국인 주거 지원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운영합니다. 2030년에는 이 모델을 다른 비영리 조직에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그네방은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콩쥐들을 잔치 보내는 방."
초대받지 못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이 방식이, 앞으로 몇 개의 방으로, 몇 개의 도시로 더 뻗어갈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입니다.
[단체 소개]
나그네방은 도심 속 주거 공간이 필요한 청년에게 조건 없이 방을 내어주며, 공동체적 생활 경험을 통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라이프 커뮤니티입니다. 2018년 서울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과 경상북도 안동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요 연혁]
시기 | 주요 내용 |
2018. 여름 | 서울 구로구 오류동, 남는 방 한 칸에서 '나그네방' 시작 |
2018~2024 | 용산구를 거쳐 성북동으로 이전 |
2022 | 국내 거주 외국인 입주자 수용 시작 |
2024. 겨울 | 성북동 정착, 방 세 칸으로 확장 |
2025.5 | 비영리 스타트업을 조명하는 행사에 초청 |
2025.10 | 나그네방 7주년 기념 첫 공개 행사 (토크·공연) |
2025.11 | 안동 나그네방 '코이노니아 스테이' 오픈 (최대 7명 거주) |
2026~ | 비영리 공익법인 설립 착수, 5개년 확장 계획 개시 |
[관련 정보]
https://nagnebang.github.io/1/ (나그네방 소개 페이지)
nagnebang@gmail.com (나그네방 대표메일)
instagram @nagnebang (나그네방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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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나그네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