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 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이날의 주제는 단 하나, ’서사’였습니다. 사업 성과도, 지표도, 트렌드도 아닌 활동가 자신의 이야기. “쉼 없이 돌아가는 현장 속에 잠깐 멈춰 서서, 내 이야기를 정리해 본 적 있나요?”라는 질문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시작점부터 변곡점, 반환점, 연결점, 발현점까지 하루의 흐름을 함께 통과한 시간이었습니다.

오프닝: 217명이 응답한 질문 (양소희 · 유난무브먼트)
오프닝은 기획위원으로 함께한 유난무브먼트 양소희 대표가 열었습니다. “3개월 전 첫 회의 때, 어떤 분들이 이 자리를 채워주실까 궁금했는데 그 눈빛들을 현장에서 보니 반갑고 설렌다”는 인사로 시작한 그는, 서사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단시간에 그럴듯하게 흉내 내거나 복제할 수 없는 것. 숫자만으로 전부 담아낼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축적이 담긴 사건과 이야기.”
기술과 데이터의 시대에 생산성과 효율의 기준에 재단당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는 힘, 그 고유성과 의외성이 바로 서사에서 나온다는 것. 그래서 공익활동가들의 서사는 개인과 조직을 넘어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획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어서 사전 서베이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목표는 100명이었는데, 무려 217명이 응답했습니다. 그만큼 이 질문에 가닿는 지점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화면에 뜬 워드클라우드 한가운데에는 커다랗게 ’열정’이라는 단어가 자리했습니다. 활동을 시작하던 때의 마음입니다. 지금 나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는 ’전환과 재정의’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활동하며 가장 크게 변한 것으로는 절반 가까이가 ’세상과 사회 구조를 보는 눈’을 꼽았습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한 답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신념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 한편 눈에 밟히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인정과 지지에서 오는 효능감은 필요에 비해 낮았고, 우리의 활동이 사회에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내 이야기를 정리해 나눠보지 못한 이유로는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가 없어서’가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이날의 컨퍼런스가 왜 필요했는지를 데이터가 먼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시작점: 독서모임인 줄 알고 갔다가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광호 · 펭귄의날갯짓)

첫 발표는 정신질환과 고립을 경험한 청년들의 단체, 펭귄의날갯짓 이광호 대표가 맡았습니다. 그의 시작은 황당할 만큼 우연했습니다. 공황이 심해져 일을 그만두던 시기, SNS에서 본 모임 홍보가 “너무 내 저격 같아서” 광고인 걸 알면서도 ’한번 당해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연락하니 돌아온 답은 “제가 좀 늦어요. 광호 님이 들어가셔서 참여자분들을 맞이해 주세요.” 얼떨결에 노트북을 끼고 앉아 첫 참여자를 맞이한 그날, 그는 활동가 제안을 받았습니다. 독서모임인 줄 알고 수락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질환 이야기를 실컷 하자’는 프로젝트 안의 독서모임이었다고요. “이건 불완전 판매다, 보험도 철회해 주는데 활동도 철회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곧 깊어졌습니다.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단체를 꾸리며 지원 심사 자리마다 들었던 질문들 “당사자들끼리 있는데 위험하지 않아요? 전문가는 어디 있어요? 의사는요?” 그 질문에 화가 나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단체를 만들었다는 것. 진단을 받고 공부하다 보니 자신의 경험이 “교과서에 있는 흔한 케이스”였다는 것. 그래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흔히 미쳤다고 표현하는 게, 개인이 미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좀 미친 것 같은데.”
치유되지 않은 것들이 대물림된다면, 누군가는 여기서 끊어야 한다는 마음. ‘연봉 236만 원(월급이 아니라 연봉입니다)’을 화면에 띄우며 “약을 먹으면 우울과 불안은 줄지만, 약을 먹는다고 일자리가 생기고 집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노동과 주거의 문제를 함께 풀어야 정신질환과 고립의 문제도 풀린다고 말할 때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언제든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활동한다고 했습니다. 조직이 자리를 잡고 당사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떠나겠다고. 그런데 어쩌다 대표가 되고 보니 “대표는 노동자가 아니더라”고요. 실업급여도, 산재도 안 되고, 노동조합도 탈퇴해야 했던 모순. “이 구조가 불합리하다면 같이 바꿔야 하는데, 내가 도망치면 바꿀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견디고, 그것마저 바뀌면 그때 정말 그만두겠다는 말에서 오히려 단단한 지속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은 약을 안 먹고 올라왔거든요.” 원래는 심장 박동을 낮추는 약 없이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는 그가, 이날은 맨몸으로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은 고함을 지르고 있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약자들이 점점 더 소리를 키워야만 하니까요. 저는 이 악순환을 줄이는 방법이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테이블 토크에서는 각자의 ’시작’이 테이블마다 쏟아졌습니다. 발표 없이, 평가 없이, 그저 듣고 응원하는 대화가 여기저기 쌓였습니다.
변곡점: 다섯 번의 방향 전환, 24년의 파도타기 (안연정 · 파도치다 / 비영리 활동가 학교 엣지)

두 번째 세션은 24년 차 활동가 안연정 님이 ’다섯 번의 변곡점’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여정을 펼쳤습니다. 스스로를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고, 대신 밴드 음악을 한다는 감각으로 일해온 기획자”라고 소개한 그는, 변곡점이란 “어떤 방향이 열리고 빛이 보이면 그걸 따라 천천히 나아갔던 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20대의 홍대 앞 독립문화 현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냐”, “남들처럼 가방도 사고 주식도 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기, 돈 없이 잘 살기’를 붙들었던 시절. 경험과 자원을 나누는 시장과 인디 뮤지션 데모 마켓을 만들던 시절. 버려지는 나무를 수거해 다듬으며 “담백한 노동”이라 부르던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시절. 그리고 버려진 관리사무소 하나를 점거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포 석유비축기지(지금의 문화비축기지)에서 시민의 실험 공간을 지키려 서울시와 협상하던 시절까지. 협상 전날이면 동료들과 타로를 보며 “내일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와”, “내일은 일단 듣고만 와”라고 태도를 정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과 함께 뭉근한 공감이 번졌습니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시간”이었다고요.
청년허브 센터장으로 일하며 ’번역자’에서 ’통역자’가 되었던 시간, 그 후 찾아온 소진의 시간, 그리고 지금 비영리 활동가 학교 엣지에서 “내가 만난 우연과 행운이 특별한 기회에 그치지 않고 모두의 성장 기반이 되게 하는 일”을 꿈꾸는 현재까지. 그는 활동 내내 반복해온 질문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 있지 않을까.” 답이 안 나와서 “그냥 계속 닥치고 앞으로 나가자”고 생각한다는 솔직함에, 객석의 많은 활동가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청년허브도, 놀이짱도, 비축기지도 물적 토대는 다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 여정에 연루됐던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런 믿음으로 활동합니다.”
이어진 두 번째 테이블 토크에서는 30분 동안 각자의 전환의 순간들, 어려움 속에서도 활동을 지속하게 한 동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반환점: 냄비뚜껑과 신문지로 만든 오케스트라 (황정인 ·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쉬는 시간 이후, 컨퍼런스는 ’나’에서 ’우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반환점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엔 말이 아니라 소리였습니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황정인 님이 진행한 공동체 음악 워크숍. 그는 자신의 활동을 “음악·예술, 교육, 치유가 만나는 교차점에 있는 일”이라 소개하며, “오늘 활동 중 가장 엉뚱한 활동일 텐데, 끝나고 ‘그 활동은 뭐였지?’ 싶으시다면 성공”이라고 웃었습니다.
손가락을 풀고, 어깨를 두드리고, 몸으로 소리를 내고, 테이블별로 ‘덩-쿵-기덕’ 우리 장단을 나눠 맡아 주고받는 사이 강당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각 테이블에 놓여 있던 정체불명의 물건들이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양은 냄비뚜껑, 핸드벨, 징, 싱잉볼, 칼림바, 그리고 신문지. “여행 갔다가, 버릴까 말까 하다가 안 버리고 모아둔 것들”이라는 진행자의 물건들이 이날의 악기가 되었습니다.
지휘자는 없었습니다. 냄비뚜껑이 세 번 울리면 소리가 커지고, 징이 울리면 잦아들고, 싱잉볼과 칼림바가 마무리를 여는 ABA 형식의 즉흥곡. 시작 전 그가 건넨 한마디가 이날 컨퍼런스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처럼 들렸습니다.
“내 소리가 어떻게 기여하지,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체의 소리에 내 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놓을까에 집중하세요.”
백여 명의 활동가가 신문지를 흔들고 냄비뚜껑을 치며 하나의 곡을 완성한 순간 연대라는 말을 몸으로 감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연결점: 서사로 연결될 때, 연대가 살아난다 (김보림 · 청소년기후행동)

다음은 아시아 최초 청소년 주도 기후소송 승소, 그리고 골드만 환경상 수상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된 청소년기후행동 김보림 활동가. 하지만 사회를 맡은 변화지원팀 유보미 팀장은 “눈부신 성과가 아니라,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도전과 고민을 듣고 싶어 모셨다”고 했습니다. 섭외 회의에서 김보림 활동가가 했다는 말 “내러티브는 우리 조직의 정체성이다” 말 그대로, 이날 발표의 제목은 ’서사 감각, 연대가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연대가 살아나지 못했던 순간들을 꺼냈습니다. 기후운동에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 정작 실천의 자리에서는 “발전 노동자들에게 연대하자”로 곧장 귀결되며 슬그머니 ’그들의 문제’, ’안타까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구조.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문제는, 아무리 옳고 정당해도 운동 밖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부당함 정도로만 들린다”는 진단이 뼈아팠습니다.
전환점은 2024년 말, 당진·태안·영흥·삼천포·하동의 발전소를 다니며 노동자들과 둘러앉아 나눈 대화였습니다. “내년에 내 자리 없어지는데 나 어디로 가?” “우리 여기 살아 있는데, 왜 발전 노동자 희생해서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구체적인 말들 앞에서, 매일 ’석탄 발전소 꺼라’를 외치던 그는 처음으로 ’이럴 거면 폐쇄 안 하는 게 안전하겠는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확신이 무너진 순간이라기보다, 내가 그동안 나의 시야 안에만 머무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타인의 서사를 만난다고 곧장 연대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답을 찾는 건 여전히 자신의 몫. 하지만 생각의 테두리가 넓어지자 운동이 확장됐습니다. ’중요하니까 외친다’가 아니라 ’이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스스로 납득할 언어를 찾기 시작했고, 발전소 사고로 돌아가신 고 김충현 노동자의 추모제에서 발언을 요청받았을 때는 “내가 뭐라고 이 자리에서 말하지”를 붙들고 고민하다, 그의 죽음과 발전소의 구조적 문제를 자신의 아버지의 문제와 연결해 자기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연대가 아니라, 내 언어가 생겼기 때문에 그들의 서사와 나의 서사가 만났을 때 어떤 변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를 그리게 됐어요. 서사로 연결되는 연대는, 단순한 연결됨과는 크기가 다릅니다.”
발전 노동자 중심의 운동에서 ’홍보 실무를 맡는 젊은 여성 활동가’가 아니라 ’함께 운동을 만드는 대등한 파트너’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대목은, 연대에 대해 오래 고민해 온 많은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건넸습니다.
발현점: 활동가의 서사는 어떻게 사회의 서사가 되는가 (서현선 · 조양호 · 홍은전)

마지막 세션은 대담이었습니다. 루트임팩트 이사이자 SSIR 코리아 전 편집장 서현선,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만드는사람들’을 10년째 이어온 조양호, 그리고 『그냥, 사람』 『나는 동물』의 저자이자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 스토리 편집자, 기획자, 기록활동가가 한자리에 모여 ’활동가의 서사가 어떻게 사회의 서사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활동가는 두 번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홍은전 · 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활동가의 이야기는 왜 잘 드러나지 않을까라는 첫 질문에, 홍은전 작가는 고병권 선생의 글 「두 번째 사람, 홍은전」을 낭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두 번째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의 통곡을 직접 듣는 자리,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입니다.
“활동가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는 건 당연해요. 우리는 두 번째 자리에 있으니까요. 첫 번째 사람의 소리와 몸짓에 귀 기울여 그것을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에게 전하는 자리. 그게 바로 이야기고, 서사거든요.”
소매 잡히는 건 괜찮은데 정말 어려운 건 “멱살 잡히는 일”이라고, 억울하고 버겁고 죄책감을 느끼는 그 모든 순간을 소화해 나가는 과정이 어렵기에 소중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활동가 개인에게 서사화가 어떤 힘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이날 가장 많이 회자된 답이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에요. 예민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에요. 글을 써야 경험을 아름답게 해석할 수 있고, 써야 예민해지고, 써야 똑똑해집니다.”
방법을 묻자 답은 명쾌했습니다. “우린 다 알고 있습니다. 쓰시면 돼요.”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마감이 있어야 하고, 발언 요청이 오면 기회 삼아야 하고, 듣는 것만큼 말하고 읽는 것만큼 쓰는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것. “오늘 들은 이야기, 집에 가서 ‘너무 좋았어’ 하지 말고 리뷰를 쓰세요. 친구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말해보세요.”
“활동가에게도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조양호 ·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조양호 님은 구조의 문제를 짚었습니다. 개인 미디어의 시대라지만 정작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활동가의 서사를 사회와 연결해 줄 미디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발달장애인들과 농사짓는 충남의 한 활동가가 “1년만이라도 매일 옆에서 내 활동을 기록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이라고 했다는 인터뷰 일화는, 기록의 필요와 현실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그가 동료들과 시작한 ’변화를만드는사람들’은 활동가 1,000명 인터뷰를 목표로 10년간 296명의 이야기를 쌓아왔습니다. 고인이 된 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선생의 인터뷰가, 그분이 떠난 뒤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읽히고 인용되는 걸 보며 “이런 이야기가 없었다면 누가 그분을 기억해 줄까” 생각했다고요.
“아티스트에게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활동가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기록하고, 무대에 올려주는 사람들이 비영리 생태계에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벤트가 아니라 10년, 20년 축적해야 합니다.”
“누군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야기는 소실됩니다.” (서현선 · 루트임팩트)

서현선 님은 ‘활동의 서사’와 ’시대의 서사’ 사이에 ’활동가의 서사’를 놓았습니다. 활동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대개 활동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활동가의 서사가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편집자로 일하며 깨달았어요. 어떤 이야기는 발굴되고, 어떤 이야기는 소실됩니다. 이야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 조직과 분위기가 없으면, 활동가의 이야기는 쉽게 소실되고 말 거예요.”
그는 활동가의 서사를 “굉장히 창의적인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임에 처음 갔다면 떠나는 게 정상인데 그 조직의 대표가 되어 있는 이광호 님의 이야기처럼, 사람의 마음은 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창의성이 다른 사람들을 촉진하고, “너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인사를 건넨다고요. 활동가의 이야기가 시민사회 바깥으로 확장되려면 특수한 경험을 보편의 언어로 연결할 충분한 시간과 투자, 그리고 깊은 대화와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팀이 필요하다는 제언으로 대담은 이어졌습니다.
닫으며: 오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발표와 발표 사이,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테이블이었습니다. 결론도 평가도 없이, 처음 만난 활동가들이 서로의 시작과 전환과 연대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세 번의 테이블 토크.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시간이 끝났다는 안내에 아쉬움의 탄식이 나올 만큼 대화는 뜨거웠습니다.
이날 테이블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핵심만 추려 익명으로 정리해 10월 발간 예정인 자료집에 담깁니다. 사전 서베이 데이터도 추후 공유될 예정입니다.
내 이야기와 서로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쌓이는 일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핵심 자산이 되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을 품고 참가자들은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홍은전 작가의 숙제도 함께요.
“집에 가서 ‘너무 좋았어’ 하지 말고, 쓰세요.”
이 후기가 그 첫 번째 쓰기입니다.
※내러티브 닷 컨퍼런스는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가 민주주의기술학교, 진저티프로젝트, 호모인테르와 협력하여 운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