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마감들> : 전지
by NPO지원센터 / 2019.10.02
2019. 8. 21 - 9 . 20

평일 10시 - 5시
서울시NPO지원센터1층 품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도 사람이 보인다
- 주차금지와 모르타르, 골목에서 만난 것들 - 






플라스틱 의자에 기어코 노끈을 거미줄처럼 묶어 놓은 사람스테인리스 김치통에 시멘트를 부어 굳혀놓은 사람약수통에 스프레이로 알록달록 색을 칠하고 옷걸이를 꽂은 후 음료수통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사람네모반듯하게 각을 잡아 미장해 놓은 사람흐르면 흐른 대로 대강 반죽을 엉겨 굳혀 놓은 사람.

어릴 적 서랍이나 의자가 고장 나면 아버지가 잘 고쳐 주셨는데뭔가 10% 부족한 듯한 재료지만 성의와 노력을 같이 꽁꽁 싸매거나 욱여넣으셨는지 어떻게든 다시 잘 쓰도록 고쳐주시곤 했다.

 

주재료가 되었던 것들은 검정 전기 테이프청테이프빨랫줄순간접착제빨랫줄은 끄트머리를 꼭 매듭을 지은 후 라이터로 지져 동그랗게 말았고청테이프는 줄을 맞춰 돌돌 말아 붙였고 완성한 후엔 청테이프 위에 볼펜으로 고친 날짜를 적어놓기도 하셨다
아버지의 마감 솜씨를 물려받았는지 나도 작업실을 꾸리면서 참 많이 매달고 붙이고 글씨를 써댔다.

 

사실 길에 나와 있는 것들이 예쁘긴 힘들다.

없어져도 덜 서운할 것들이면서 역할에 충실한 강도와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 그만일 존재들인데 이따금 그분들에게 과잉 감정을 이입해본다귀여움부터 도도함엉뚱미는 디폴트 값이 된지 오래고 어떤 건 프로이트 정도는 와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납작한 상황과 이유에 오버스러운 의미를 역시나 청테이프로 칭칭 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매끄럽기만 한 조용함을 상상하고 나면 나는 무조건적으로 이 울퉁불퉁한 거침을 치켜세우고 싶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선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길에는 말을 건네고 있는 존재들로 굉장히 시끄럽다더 더 시끄러워라.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10.02, 조회수 :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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