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권리 06. 안락사를 지지한 종교인, 투투 대주교
현안과이슈 / by 우엉군 / 작성일 : 2022.07.12 / 수정일 : 2022.07.12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삶과 별개인가?”


바다 저 편의 뉴스들이 죽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간의 권리를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마지막에 '좋은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위치하지 않을까요?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한 의사가 3년간의 가택 연금을 마쳤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션 데이비슨(Sean Davison)은 3명의 조력자살을 진행한 것에 대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가택 연금 3년형과 사회봉사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고인이 된 데즈먼드 투투(Desmond Mpilo Tutu) 전 대주교의 지지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85세 대주교의 조력사 법안 요청


故 데즈먼드 투투 전 남아공 대주교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의 흑인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철폐시킨 역사적인 인권 운동가 중 한 명입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후 흑인 최초의 대주교로서 성소수자와 팔레스타인 등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기독교인으로 안락사에 호의적인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처음으로 조력사(assisted dying)를 공식 지지했습니다. 1996년 은퇴 이후에 전립선암 등 투병 생활을 겪은 영향도 있었겠지만 만델라 전 대통령의 연명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는 연명 치료가 만델라의 존엄한 삶을 모욕했다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 (2004)


2년후 투투 전 대주교는 조력사 법안을 강력히 요청하는 입장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2016년 10월에 85살 생일을 맞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때가 오면, 조력사를 선택하고 싶다”는 글을 기고하며 전 세계에 호소했습니다. 

"85세 생일을 맞아 생의 출발선보다 끝자락에 더 가까워지면서, 저는 사람들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는 연민과 공정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말기 환자 또한 같은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어머니 행성(Mother Earth)을 언제 어떻게 떠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현재 훌륭하게 자리 잡은 완화 치료와 더불어 존엄한 조력사(assisted dying)도 선택지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투투 전 대주교는 인권의 선구자로서, ‘존엄한 삶’의 관점에서 조력사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존엄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끔찍한 고통을 견디는 것이 존엄한 삶인가요? 존엄한 삶이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라면, 죽음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까요? 왜 다른 사람이 나의 죽음을 결정해야 할까요? 

투투 전 대주교가 기고한 시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가 말기 환자에게 조력자살를 허용한 직후였습니다. 반면, 남아공과 영국에서는 타인의 자살을 돕는 것이 여전히 14년형의 중범죄에 해당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 정치인, 입법가, 종교지도자를 향해 공식적으로 말했습니다. “때가 오면, 저는 조력사로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죽음의 질’ 1위, 영국의 지향점


투투 전 대주교의 호소가 있기 1년 전인 2015년 9월, 영국 의회는 말기 환자에 대해 조력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최종 부결했습니다. 반대 330석, 찬성 118석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적 공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여론 조사는 응답자의 82%가 조력사 법안을 지지하고, 응답자의 44%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위해 법을 어기고 14년형을 감내할 수 있다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종교지도자 간에서도 충돌이 있었습니다.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대주교는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해당 법안을 거절해야 한다고 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반면 로드 캐리(Lord Carey)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조력사는 합법적이며 나아가 "뿌리 깊이 기독교적이며 도덕적(profoundly Christian and moral)"인 발걸음이라고 지지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로 영국 국왕 다음 서열에 해당하는 요직입니다. 투투 전 대주교는 케리 전 대주교의 발언이 자신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음 달인 10월 5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를 발표했습니다. 죽음의 질 지수는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2010년에 개발한 지수로, 임종 환자의 통증을 덜고 가족이 심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잘 발달해 있는가를 측정합니다. 흥미롭게도 조사 대상 80개국 중 1위는 영국이었습니다.


2015년 죽음의 질 지수 지도, 한국은 18위였다 (출처: EIU)


죽음의 질 지수는 '완화 치료'를 핵심으로 주문합니다. 죽음의 질에서는 임종하는 장소가 중요한데, 병원이 아닌 집이나 호스피스에서 죽는 것이 죽음의 질이 높다고 여깁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영국의 호스피스 단체는 말기 환자의 병원 입원 비율을 현재보다 20% 더 낮춰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반면에 남아공은 전체 34위이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합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호스피스 시설이 가장 많아, 이웃 국가에서도 완화치료를 위해 찾을 정도라고 합니다. 정부는 완화 치료에 대한 국제 애드보커시를 선도하며 2013년 아프리카연합에서 완화 치료에 대한 성명을 공식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민간 호스피스 운동이 성장 중이고, 종교기관도 완화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투투 전 대주교는 5년인 2021년 12월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는 호스피스 시설이었습니다. 마지막의 순간까지 인권의 진보를 위해 투신했던 그였지만 완화 치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오랜 준비를 통해 우리에게 죽음도 역시 삶의 한 부분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완화 치료와 안락사의 관계를 살펴봐야겠습니다.



기후정의를 위한 행동도 제안했던 투투 대주교 (2011)



참고문헌

한국 '죽음의 질' 세계 18위, 2015.10.8, 조선일보
The 2015 Quality of Death Index, 2015.10.5, The Economist


*사용된 이미지는 위키피디아와 EIU 오픈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작성자 : 우엉군 / 작성일 : 2022.07.12 / 수정일 : 2022.07.12 / 조회수 : 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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