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아카이브33]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제도
기획아카이브 / by NPO지원센터 / 작성일 : 2021.06.17 / 수정일 : 2021.06.28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생길 수 있는 발열, 통증 등의 증상에 대비해 일각에서는 이른바 ‘백신 휴가’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2주 간 자가격리를 해야하거나 본인이 직접 확진 판정을 받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유급병가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33번째 기획아카이브에서는 코로나19로 그 필요성이 더욱 대두된 유급병가, 상병수당 관련 국내 논의를 다루고, ‘아플 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관련 국내외 제도를 소개합니다.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아플 때는 쉴 수 있도록, 모든 노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병가’지만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병가를 쓸 수 있는 직장의 경우 대부분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 회사가 마련한 문서에 명시되어 있을 뿐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경우 무급휴일로 처리되고 그마저도 연차를 먼저 사용하도록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의 경우 공무원에 한해서만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8조에 따라 연간 최대 60일(공무상 병가일 경우 180일)까지 유급병가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해 화제가 된 ‘백신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의 경우 접종 당일 공가를, 다음 날 이상 반응이 있는 경우 하루 간의 병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침이 마련되었지만, 사기업 등 기타 사업장에는 ‘권고’만 되었습니다.
 

예외적으로 ‘생리휴가’는 근로기준법 제73조에 따라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무급으로 보장됩니다. 최근에는 아시아나 대표가 이를 어기고 무려 138차례나 휴가를 거부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거나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어떨까요?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최소 2주간의 병가가 필요하기때문에 무급휴일로 처리될 경우 생계에도 타격이 크고, 심리적 부담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하여 정부는 노동자가 무리하게 출근하는 상황 등을 막기 위해 일 최대 13만 원 한도로 개인별 임금을 지급하거나, 가구 단위로 생계지원비를 지급하였습니다.
고용주가 직접 지급하는 유급병가와 달리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공이 소득을 보전해주는 사회보장제도입니다. 국내의 경우 전염성이 높은 코로나19의 특성을 반영해 시급히 마련된 제도이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오랜 시간 정착되어있는 제도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운영 중인 제도로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경우 생계가 어렵거나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쉴 수 없다면 노동자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법적으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열, 기침 등 의심 증상이 있을 때 “눈치 보지 않고” 3~4일을 쉴 수 있는 권리 다른 국가들에서는 어떻게 보장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코로나19 유행 이후 근로자의 이전 수입 대비 상병수당과 유급병가의 임금 보전율(%)을 기록한 도표 (2020년 6월 기준)
OECD 국가들 중 미국(USA)과 한국(KOR)만 법정병가 및 상병수당(Baseline mandatory paid sick leave)이 보장되지 않는다.
국가가 의무로 규정하는 상병수당​(Mandatory paid sick leave), 사용자가 임의로 지급하는 유급병가(Non-mandatory employer sick pay​)

  

상병수당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은 흔히 ‘복지국가’로 알려진 서북유럽 국가들입니다. 국가의 지원 없이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만을 규정해둔 경우, ‘사업주’가 먼저 혹은 일부 유급병가의 형태로 지급하면 추후 국가가 보전, 연속 지급하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로 제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과 지급 기간, 임금 보전 수준, 해고 금지 조항 등 세부적인 내용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아래에서는 유형별로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사례를 살펴보고 시행 3년 차에 접어든 ‘서울형 유급병가제도’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업주가 ‘유급병가’를 지급하도록 규정한 네덜란드

노동자가 병가를 요청하는 경우 사용자는 최대 2년 동안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합니다. 만약 이 금액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 첫 1년 동안은 추가로 금액을 보태 최저임금에 맞게 지급하여야 하죠. (2년 차부터는 적용되지 않음). 네덜란드의 병가는 신체 부상이나, 질병 외에도 번아웃 등 심리적, 정신적 질환까지 폭 넓게 보장하고 장기기증, 임신, 출산으로 인한 병가의 경우에는 임금을 100%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과 기간제 계약직은 물론 외주 업무 등을 처리하는 프리랜서, 1인 기업이라도 고용보험에 가입된 경우 유급병가가 보장됩니다. 이때 질병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해고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국가가 규정한 부당해고에 관해서는 최대 1년간 임금 보전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피고용인의 계약이 병가 기간 중 만료되는 경우에는 국가에서 이어받아 ‘상병수당’을 지급합니다. 한편 2년이 지난 후에도 노동자가 복직이 어려운 경우 해고 등의 절차를 거쳐 국가가 상병수당 및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국가의 ‘상병수당’이 지급되는 노르웨이

노동자가 3일 이상의 병가를 요청하는 경우 사용자는 최대 16일까지 평균임금의 100%를 지급해야 합니다. 노동자는 진단서 등을 제출해야 하며 사용자가 지급한 유급병가 비용은 추후 노동복지부가 환급해줍니다. 이후의 기간에는 최대 1년까지 국가가 임금의 100%를 상병수당으로 지급합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는 상병수당이 지급되는 기간 동안 노동자가 해고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고용보험이 아닌 사회보험의 일환으로 상병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도 신청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소규모 사업장과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서울형 유급병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무급병가조차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어 각 기업에 따라 임의로 보장되고 있고, 유급병가는 일부 대기업이 ‘복지’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5인 이하 사업장,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은 물론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까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죠.

‘서울형 유급병가’는 아픈 노동자가 생계 걱정 없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연간 최대 14일까지 일급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유급병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고용주가 아닌 도시정부가 지급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상병수당으로 분류될 수 있죠. ‘아프다 가난해지는’ 빈곤의 경로를 끊으려 “서울시가 고용주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모두 코로나19로 그 중요성이 더 활발히 논의되긴 했지만, 노동자가 ‘아프면 쉴 권리’는 전염병과 무관하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일부 영역에만 임의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확장하여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서울형 유급병가’처럼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실험도 분명 유의미한 진전이지만, 앞으로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모든 노동자가 거주지와 상관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가 단위의 제도를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논의가 늦게 시작된 만큼,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어서 소외받는 계층이 없도록 꼼꼼하고 세심한 검토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아카이브가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확인하고, 보다 나은 제도를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한겨레] ‘아프면 쉴 권리’ 부상+질병 때 받는 ‘상병수당’ 도입 논의 시작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991189.html#csidxb16cb9fb4419fd6ac9efa0ec8f115b2


[경향신문] 직장인 10명 중 4명 ‘연차의 자유’ 없었다…“코로나19 예방 위해서라도 연차·유급병가 보장돼야”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9271600001#csidx0cfa177d1e4b2c18b08703e0f2d93f2


[한국일보] 일반인 접종 7월부턴데... '백신 유급 휴가' 지원, 도입되긴 할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1616450004877

[OECD] Paid sick leave to protect income health and jobs through the COVID-19 crisis (도표)

[네덜란드] 정부 안내문 https://business.gov.nl/regulation/sick-pay/

[네덜란드] 고용보험 https://www.uwv.nl/werkgevers/index.aspx

[노르웨이] 노동복지청 https://www.nav.no/en/home/benefits-and-services/Sickness-benefit-for-employees


[한겨레21] 서울시 유급병가제도 1년…아프면 쉬는게 당연했다면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72.html


[서울시] '서울형 유급병가' 14일로 늘어난다…연 최대 119만 원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1282


더 읽어보기 

[한겨레] 외국은 ‘생리휴가’가 없다? “아프면 누구나 쉴 수 있으니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92777.html


[한국일보] 노동자 62% “유급병가 없다”… ‘아프면 쉬기’ 방역 상식 불통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2710410000088


[참여연대]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 시행의 의의와 향후 발전방향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1652922

[민주노동연구원, 사회공공연구원] 외국의 유급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
http://nodong.org/statement/7770762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20년 9월호 통권 제186호
https://www.kli.re.kr/synap/skin/doc.html?fn=06F126D495C41C6E492585E5000B7858_21&rs=/synap/result/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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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PO지원센터 / 작성일 : 2021.06.17 / 수정일 : 2021.06.28 / 조회수 : 1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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