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미국 청소년 운동
현안과이슈 / by 그림 / 작성일 : 2020.09.06 / 수정일 : 2023.03.31

청소년들은 미래세대, 즉 미성숙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동료시민입니다. 그들은 기후위기, 동물권, 페미니즘, 청소년인권, 소수자 그룹과의 연대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크고 작은 운동을 조직하는 등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미국 청소년 운동의 타임라인과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는 틴 보그(Teen Vogue)의 기사를 번역하여 공유합니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청소년 활동가들은 사회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사람들을 조직하는데 뛰어납니다. 이러한 운동 방식 때문에 중앙집권적 리더십이 없고,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 원문: Jameelah Nashee D,  “Youth Activist Movements of the 2010s: A Timeline and Brief History of a Decade of Change”, Teen Vogue, 2019년 12월 16일 https://www.teenvogue.com/story/youth-activist-movements-2010s-brief-history-timeline-decade-of-change



2010년대 청소년 운동: 변화의 10년에 대한 타임라인과 간략한 역사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중에는 세계 무대의 중심이 된 사회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가장 열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수년 간 사회정의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지난 청소년 운동 10년이 기존 역사와 다른 점은 오늘날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을 항해하는 전문가들, 이 젊은 활동가 세대는 자신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는데 힘이 있었고, 세계와 정치인들에게 이를 들으라고 주장했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신문 광고, 전화 통화 같은 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몇 주 전부터 행동주의를 계획했던 이전 세대의 청소년들과 달리, 오늘날의 젊은 활동가들은 클릭 하나만으로 즉시 대중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활동가가 되는 것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20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이번 10년을 정의하고 세계를 변화시킨 운동을 돌아볼 수 있는 완벽한 시기이다.



2012: 미성년 입국자 추방유예제도와 드리머 운동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 and the Dreamer Movement)



드리머(Dreamers, 역자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신념을 가진 DACA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라고 불리는 젊은 미등록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고향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2010년대를 보냈다.


2008년 Cristina Jiménez와 Julieta Garibay는 이민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 단체 UWD(United We Dream)를 공동 설립했다. UWD는 부모를 따라 어릴 때 미국에 왔고, 시위와 로비를 통해 법적 보호와 권리를 위해 싸웠던 젊은 미등록 이민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UWD만이 최전선에 있는 것은 아니다. 2012년 6월, 두 명의 시위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덴버 선거 사무소를 일주일간 마비시킨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 해 다른 대통령들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6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미성년 입국자 추방유예제도(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를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7년 이전에 16세 미만 나이로 미국에 입국한 약 69만 명의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추방 보호, 취업 허가, 사회보장번호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수혜자들은 2년마다 이 문서를 갱신할 수 있었다. 이 엄청난 승리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님 중에 한 분이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추방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미등록 활동가 Johanna Calle는 2012년 ACLU에 기고했다. “추방으로 부모를 잃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행정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나와 같은 이민자 가족들이 생이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


현재 트럼프의 대통령은 드리머들에게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가져 왔다. 2017년 그는 프로그램을 폐지했고, 청소년 시위와 파업을 만났다. 연방 판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거의 80만 명에 달하는 드리머들은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들의 최종 운명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내년 봄에 판결을 내리기 위해 올해 11월부터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10년이 지나도 DACA에 대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역자주: 2020년 6월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DACA 폐지 시도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림. 이에 행정부는 DACA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축소를 검토하고 있음.  

열린뉴스통신, “트럼프 행정부 "DACA 프로그램 재검토" 불체 청소년 추방 재시동”, 2020년 7월 30일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24930



2012: 패스트푸드 노동자들과 15달러를 위한 투쟁 (Fast-Food Strikers and the Fight for $15)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은 2012년 11월 29일 뉴욕에서 200명의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현재 연방 최저임금 $7.25에 불만을 품고 더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파업에 들어가며 시작되었다. 활동가들은 최저임금이 한 명의 성인이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최저임금과 파트타임 근로시간과 완전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북미서비스노조(Service International Employees Union)의 사무국장 Jonathan Westin이 2013년에 말했다. Westin에 따르면 사람들은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자동차 뒷좌석과 노숙자 쉼터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고작 100달러를 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높이기 위해 투쟁했고, 파업은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 movement)에 영감을 주었다.


2014년 시애틀은 미국의 주요 도시 중에서 최초로 최저임금 15달러를 통과시켰다. 2년 후인 2016년에는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모두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을 선언했고, 마침내 노동자들의 요구는 인정을 받았다. 이것이 수년 간 이어진 15달러를 위한 투쟁의 시작이었다.


2016년 말, 미국 전역 340개 도시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통해 15달러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면서 운동이 확대되었다. 그 결과, 12개 이상 도시와 주들은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점점 더 많은 주와 도시들은 한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2018년 12월, 뉴저지가 최저임금을 인상한 주들의 대열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공무원들은 18세 미만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미루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풀뿌리 단체들의 노력으로 젊은 활동가들은 젊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상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데 성공했다.  


“어느 시점에 우리는 정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조직하고, 밀어 붙일 용기가 있었다.” 17세 Fiona Joseph은 지난 2월 틴 보그(Teen Vogue)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을 조직하고 강하게 버티는 우리의 힘이 지금 이곳으로 밀어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3: 트레이본 마틴, 마이크 브라운, 블랙 라이브즈 매터 (Trayvon Martin, Mike Brown, Black Lives Matter)



2012년 2월 26일, 17세 트레이본 마틴은 편의점에서 집으로 걸어 가다가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의 총을 맞고 살해 당했다. 2013년 짐머만은 2급 살인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과실치사 혐의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판결에 자극을 받은 알리시아 가르자(Alicia Garza), 오팔 토메티(Opal Tometi), 패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는 #BlackLivesMatter 운동을 만들었다.


"트레이본 마틴이 2012년에 살해되고 2013년 조지 짐머만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저의 몸과 정신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컬러스는 이 운동의 6주년에 대한 틴 보그의 특집에 기고했다. "알리시아와 오팔과 나는 전 세계의 반흑인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돕는 온라인 커뮤니티 #BlackLivesMatter를 만들었다."


그들의 노력의 필요성은 그 이후로 수없이 비극적으로 검증되었다. 2014년 8월 9일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Darren Wilson)의 총을 맞고 살해 당한 마이클 브라운은 당시 범죄 기록이 없는 18세 대학생이었다. 퍼거슨에서 몇 번의 시위가 있었고, 흑인 신체에 대한 경찰의 폭력 문제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퍼거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 여러 도시의 조직가 들은 자신의 커뮤니티에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챕터를 만들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는 모든 연령대의 활동가들이 반흑인 인종차별에 맞설 수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알톤 스털링(Alton Sterling)과 필란도 카스틸레(Philando Castile)의 살인 사건 후, 10대 활동가들은 평화로운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를 열었고, 시카고의 거리를 마비시켰다. 에릭 가너(Eric Garner)의 살인에 대한 응답으로 18세 Nupol Kiazolu(현재 Black Lives Matter 뉴욕 대표)은 가너의 고향인 뉴욕주에서 시위를 이끌었다. 


오늘날 블랙 라이브즈 매터는 40개 이상의 지부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로, 회원들은 "흑인 커뮤니티에 주정부와 자경단에 의해 가해진 폭력에 개입할 지역 권력을 조직하고 구축"한다.



2016: 스탠딩 록과 NoDAPL (Standing Rock and NoDAPL)


경찰에서 개울을 가로 질러 카메라에서 멀어지는 시위자의 이미지가 거대한 철조망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NoDAPL 운동은 자칭 물 수호자들이라는 젊은 아메리카 원주민 그룹이 다코타 송유관(Dakota Access Pipeline) 건설에 대응하며 시작했다. 송유관은 스탠딩 록(Standing Rock)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원주민 커뮤니티를 위협할 것으로 고려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수(Sioux) 부족의 일원인 Anna Lee Rain Yellowhammer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을 중단하라”는 Change.org(역자주: 세계적인 온라인 청원 웹사이트) 청원을 올렸다. 거기에서 젊은 활동가들은 해시태그 #StandWithStandingRock, #NoDAPL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파하고 수십만 명의 지지를 얻었다. 


수천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과 다른 시위자들은 추운 겨울에도 야영을 하며 송유관이 스탠딩 록의 주요 수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송유관 완공에 맞서 투쟁하고 있었다. 결국 시위는 오바마 대통령과 육군 공병단의 지지를 얻었고, 이들은 후에 송유관의 건설이 중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운동은 청소년에 의해 시작되었다.” 보호 구역 거주자 Iron Eyes는 2016년에 작가 나오미 클레인(Naomi Klein)에게 말했다. "그건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다코타 송유관에 대한 지역권(역자주: 남의 토지를 특정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은 거부되었다."


트럼프가 취임하자 그는 다코타 송유관에 대한 블록을 뒤집었다. 송유관에 대한 투쟁은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역자주: 트럼프는 자신의 경제부흥 업적 중 하나로 다코타 송유관 건설을 허가함. 그러나 송유관은 곳곳에서 누출 사고를 일으켰고, 2020년 7월 미 연방법원은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송유관의 운영을 중단하라고 명령함. 

VOA, “[뉴스따라잡기]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Dakota Access Pipeline)” 2016년 12월 7일 

https://www.voakorea.com/world/3626509

연합뉴스, “'트럼프 업적' 美 다코타 송유관 곳곳서 누출 사고”, 2019년 5월 23일

https://www.yna.co.kr/view/AKR20170523013100075

조선일보, “오바마가 막고 트럼프가 허가한 송유관...미 법원 "가동 중단해!" 2020년 7월 7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7/2020070700723.html



2016: 브렉시트와 "잔류하라" 캠페인 (Brexit and the “Remain” Campaign)
 

LONDON VOTED IN 및 WE STILL HEART EU라는 표지판을 들고있는 시위대 군중의 이미지


2016년 6월, 영국의 유권자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자국이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에서 탈퇴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는 18-24세 유권자 4분의 3이 EU 잔류에 투표하는 등 세대를 포함하여 여러 측면에서 나라를 분열시켰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으로의 대량 이주에 대한 백래시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하는 이민자들의 수를 줄이는 것을 간절히 바라게 만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브렉시트(Brexit)가 발표되자 국회의사당 밖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2019년 3월, 1백만 명 이상 시위자들이 다른 투표를 요구하며 행진했다. 


“주류 정치는 종종 의도적으로 젊은이들을 배제한다. 브렉시트 같은 문제는 젊은이들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3세의 브렉시트 반대 활동가 벨라 프림퐁(Bella Frimpong)은 국민투표 여파가 치열해지자 2019년 3월 틴 보그에 말했다. “그것을 설명하는 완벽한 방법은 우리 세대의 싸움이다. 모든 세대가 각자의 싸움을 하고, 2018/2019년 젊은이들은 브렉시트로 싸운다.”


브렉시트는 중앙 정부에서 격렬한 싸움이 계속되면서 여러 번 지연되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브렉시트 반대 시위도 계속되었다.



2017: 트럼프 취임식, J20, 여성 행진 (Trump’s Inauguration, J20, and the Women’s March)



트럼프의 당선은 새 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한 시위들이 발발하면서 전국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트럼프 취임식 당일, 많은 관심을 끌었던 시위 중 하나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반 파시스트' 행동으로, 보다 일반적으로 'Disrupt J20'(트럼프 취임일 1월 20일을 의미함)으로 불린다. 


이 시위로 체포된 234명은 모두 중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일부는 경찰 6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10만 달러 상당의 피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60년 형을 선고 받았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에 따르면 20명은 더 적은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고, 20명은 기각되었으며, 배심원은 6명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1년이 넘는 재판 끝에 남아 있는 모든 피고에 대한 기소가 취소되었다.


"우리가 8시간 동안 경찰 인력과 차량으로 만든 저지선에 갇혀 체포되었을 때 소처럼 취급받는 것 같았다." J20 피고인 Caroline Unger는 2018년 8월 틴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최악이었던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누구도 우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감방에 얼마나 있을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아무 관심 없이 우리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 자체가 고문이었다."


J20에 이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일일 시위가 이어졌다. 1월 21일, 워싱턴 여성 행진(Women’s March on Washington)은 전 세계 도시 백만 명이 넘는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오며 그냥 여성 행진이 되었다. 엄청난 참가자 수에 힘 입어 여성 행진은 매년 계속되고 있고, 트럼프에 대한 저항의 모멘텀(momentum)이 유지되도록 돕고 있다. 



2017: 하비 와인스타인과 미투 운동 (Harvey Weinstein and #MeToo)



2006년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MeToo 운동을 시작했지만, 2017년 10월 15일이 되어서야 이 운동은 입소문을 탔다. 이에 열흘 앞서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이 성적 비위 행위로 고소를 당했다고 자세히 설명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로 인해 다른 여성(과 남성)들이 성추행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논의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Alyssa Milano)가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여성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도록 요청한 결과 해시태그는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며(레이디 가가(Lady Gaga), 가브리엘 유니온(Gabrielle Union), 데브라 메싱(Debra Messing) 같은 유명인 포함), 이들이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온라인 행동주의가 영향을 미쳤다. 운동이 시작된 이래 여러 주에서 "성적 비위 행위에 대한 비공개 동의서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일부 주에서는 이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법적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MeToo는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Larry Nassar) 사건 등에서 여성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재판 중에 나사르가 미성년자와 젊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처음 공개적으로 나사르를 고소한 Rachael Denhollander의 리드에 따라 160명 이상의 여성이 나섰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나사르는 최대 17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 내 성추행에 대해 말하고 있다. Celia Ziliak는 켄터키 학교에서 또래 간 성폭력을 줄이기 위한 교육 운동 (S)HE Matters를 만들었다. Celia와 함께 일하는 학생 Amelia Loeffler는 틴 보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학교나 직장에서 안전하지 않거나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2018: 파크랜드 총기난사 사건과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Parkland and March for Our Lives)



2018년 2월 14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 있는 마저리 스톤먼 더글러스 고등학교(Marjory Stoneman Douglas High School)에서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다. 학교에 다녔던 학생이 학교 캠퍼스에서 반자동 소총을 쏘았고 17명이 사망했다. 학생 생존자들은 즉각적으로 행동을 취했고, #NeverAgain이라는 명확한 메시지와 함께 유명 활동가가 되었다. 그들은 총기 개혁을 원한다.


며칠 후, 그들은 국회의원들을 만났고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타운홀 미팅에 참석했다. 총기난사 사건이 있고 한 달이 조금 지난 3월 24일, 학생 활동가들이 조직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 워싱턴 DC에서 열렸고, 전 세계적으로 830회 이상의 소규모 행진이 열렸다. 주최 측은 DC에서만 80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고, 이로 인해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은 역사상 가장 큰 일일 시위가 되었다(여성 행진의 기록을 갱신함). 범인이 고등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동안 침묵 속에 있었던 엠마 곤잘레스(Emma González)를 포함하여 여러 젊은 활동가들이 연설했다.


"내가 무대로 올라오고 6분 20초가 지났다(역자주: 엠마 곤잘레스는 무대에서 범인이 총기를 난사한 시간 6분 20초 동안 침묵했다)." 그녀는 연설 끝에 말했다. "범인은 총격을 중단했고, 곧 자신의 소총을 버리고 학생들의 틈에 섞여 체포되기 전까지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다" 또한 그녀는 총기 폭력이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누군가의 일이 되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위해 싸워라."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이후 총기 개혁을 위한 투쟁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여러 주에서 총기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했고, 정치적 유력 집단이었던 NRA는 힘을 잃었다. 



2018: 미래를 위한 금요일과 기후 파업 (Fridays for Future and the Climate Strikes)



2018년 7월, 청소년 환경단체 제로 아워(Zero Hour)가 주최한 3일 간의 기후 운동에는 로비 활동, 청소년 기후 아트 페스티벌이 포함되었고,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서 전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젊은이들의 시위로 마무리 되었다. 


“기아, 폭력, 인종차별, 빈곤...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것은 나이 든 세대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다.”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온 17세 Anna Brooks는 행진 중에 틴 보그에게 말했다. 


한 달 후, 미국의 총기 개혁을 위한 학생 파업에서 영감을 얻은 15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스웨덴에 있는 자신의 학교에서 기후 파업을 열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이니셔티브가 전 세계 수백 개의 마을과 도시로 확산되면서 당시 20,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합류했다. 2019년 9월, 이 운동의 성장은 더욱 분명해졌다. 미국 50개 주 전체와 수십 개 국가에서 400만 명의 사람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파업에 참여했다. 


뉴욕에서 열린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그레타는 지도자들에게 말했다. “당신은 빈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쳤다.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전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대량 멸종의 시작에 있고,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에 대한 동화 뿐이다.”


"당신은 아직 그렇게 말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당신이 배신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2019: ICE와 네버 어게인 액션 (ICE and Never Again Action)



트럼프가 이민 정책에 집중하면서 이미 위험한 제도였던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이민세관집행국(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ICE) 압수수색은 더 크고 빈번한 데다 이주 아동들이 수용되고 있는 시설의 상태는 강제수용소라고 비유해 왔다. 


그래서 2019년 6월, 젊은 유대인 활동가들이 뉴저지주 엘리자베스에 있는 구치소 밖에서 ICE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 들었고, 이 중 36명이 체포되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활동하는 유대인 그룹 '네버 어게인 액션(Never Again Action)'은 전국의 ICE와 이민자 수용소 폐지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다시는 '다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지금을 의미한다. 우리의 고통과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정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집중 수용소'라고 부를 수 있는지 논쟁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전국에 있는 모든 수용소를 폐쇄할 때라는 것을 의미한다." 네버 어게인 액션의 Blair Nodelman은 틴 보그에 기고했다. 
 


2020년대: 무엇이 올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싸우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중요한 순간들은 나이, 장소, 경험에 관계없이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주요 순간들은 사람들의 마음, 법률, 공동체, 세계를 변화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성자 : 그림 / 작성일 : 2020.09.06 / 수정일 : 2023.03.31 / 조회수 : 1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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