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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팅 시리즈①]'문명 파괴하기'에 맞서 창조하기,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
현안과이슈 / by khoco / 작성일 : 2023.06.24 / 수정일 : 2023.06.26

 북 큐레이팅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 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책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해 전달하기보다는 추천 글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긴 호흡으로 한 주제에 얽힌 다양한 스펙트럼에 관해 저자의 사유에 따라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회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 매 순간 우리는 특정한 화두에 대해 함께 숙고해볼 수 있는 유용한 계기를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고통, 공공성, 문화 연구, 기록, 연대 등 다양한 주제와 관련한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번 소개할 책은 하버드대 영문학 교수인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입니다. 고문과 전쟁에 관한 상세하고 포괄적인 분석을 통해 고통과 창조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데요, 매우 독창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알려져 있어 꼭 추천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은 과거로부터 일관적인 화두였고, 그렇지만 항상 매 순간이 가장 극명한 사회 현상처럼 느껴지는 고통에 관한 책입니다. 고통은 피하고 싶고, 가급적 나에게서 멀었으면 하지만, 언제나 내 주변에 도사리며 예고 없이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고통에 한 번 사로잡히면 오로지 그것밖에 보이지 않으며, 그때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 제외하면 아무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고통과 그 해소는 몸의 감각과 기억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고통은 몸의 기억으로 남겨져 다른 기억에 비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몸의 고통은 한 사람의 세계에 국한됩니다. 이렇듯 고통과 고통을 주는 작인들에는 다양한 특성과 구조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염의 시대를 거치고 있고, 매일 같이 참사를 포함한 사건 사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건 사고는 한 번 발생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끝을 맺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건 사고의 현장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어떤 고통의 작인(作因, 원인)들이 우리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의 내면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고통은 사회적 고통, 집단의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지금도 어딘가 발생하고 있을 죽음과 상해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는 이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한겨례신문의 연재코너 ‘거리의 칼럼’에서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은 <고통받는 몸> 표지 사진, 출처: YES24. 아래 사진은 <고통받는 몸>의 저자인 하버드대학 영문학 교수인 일레인 스캐리.)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은 미국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2018)입니다. 부제로는 ‘세계를 창조하기와 파괴하기’입니다. 원제를 들여다 보면, ‘The Body in Pain’이고 부제는 ‘The Making And Unmaking of the World’입니다. 책 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해드리기 전에 이 책과 관련된 다른 책의 서문 중 일부를 인용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재는 정의기억연대로 개명)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이 엮은 군위안부 증언집으로, 책 제목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군위안부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증언집’입니다. 그 서론에서 군위안부의 경험에 관해 엮은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경험이란 단지 군인을 상대하는 위안소 생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 차원을 위협하는 것이며, 또한 그 영향은 지속적이면서도 현재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가족관계나 결혼, 빈곤, 내면적 불안 등 사회, 경제, 문화적 차원들과 중첩되어있는 성질의 것임을 증언은 말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표지. 아래 사진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표지. 둘 다 출처는
 YES24. )


 고통에 관한 이번 책의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경험 연구’입니다. 경험이란 인간인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직접 겪고 체험한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기억과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 지성계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경험과 ‘몸의 기억’이 우리의 생애 전반에 걸쳐 가지는 진폭 혹은 스펙트럼을 정치적, 문화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은 단순히 어떤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만 이해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험은 그 자체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험뿐 아니라 경험과 기억이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재현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구술사’입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스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같은 뛰어난 문학적인 시도도 그 맥락에 있습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문학자인 저자가 위 책에서 다루고 있는 큰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문’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며, 마지막 하나는 ‘창조’입니다. 사실 처음 이 책의 목차를 접했을 때 ‘고문’과 ‘전쟁’ 간의 관계도 그렇지만, 앞의 두 가지 주제와 마지막 주제인 ‘창조’가 어떤 관계로 어우러지는지는 더욱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서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의문은 점차 녹아 사라졌습니다. 저자는 대표적인 사례인 고문과 전쟁의 구조 분석을 통해 ‘고통의 구조’에 다가가려고 시도합니다. 고통의 구조와 이 고통을 ‘대상화’함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것, 이 과정에서 창작이 기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명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대표적 고통의 작인으로서 저자는 고문과 전쟁에 주목합니다. 고문과 전쟁이 어떻게 인간에 고통을 가하는지를 상세하고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성찰은 단순히 인간의 몸에 가하는 고통만이 아니라, 몸에 고통을 가하는 행위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현상이 어떤 사회적, 철학적,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문과 전쟁이 인간의 몸 위로 가하는 고통이 실제로 인간의 몸이 기억하는 사회와 문화, 즉 어느 도시, 어느 문명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걸 저자는 통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파괴 행위에 맞서 인간의 창조 행위가 윤리적일 수 있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증언집 서문에서, 위안부 경험이 단순히 위안소 생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가진 삶의 총체적 과정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서술처럼 말입니다. 


참고자료& 읽을거리

1. 일레인 스캐리, <고통받는 몸>, 메이 옮김, 오월의 봄, (원문은 1985년 출간), 2018
2. '고통 어루만지는 말 위에 문명이 서있다', 한겨례신문, 문화, 김지훈 기자, 2018-10-04, https://www.hani.co.kr/arti/PRINT/864521.html 

3. 한국정신대연구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군위안부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4.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원문 1983년 출간), 2015
5. '[거리의 칼럼]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김훈', 한겨례신문, 사회, 2020-05-07,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43914.html

 







작성자 : khoco / 작성일 : 2023.06.24 / 수정일 : 2023.06.26 / 조회수 : 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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