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화된 질서 속 재난을 마주하다
현안과이슈 / by 마공 / 작성일 : 2023.07.15 / 수정일 : 2023.07.17






젠더화된 질서 속 재난을 마주하다



불평등한 젠더구조가 코로나 시대 어떤 차별을 가져다주었는지, 기후위기라는 재난의 시대에 어떤 감수성이 필요한지 짚어보려고 한다. 글쓴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하나의 단일화된 삶은 없기에 다양성과 차이에 주목하는 교차성을 중시하고, 또 교차되는 연결성을 확대해가고 인식하며, 위계와 권력 구조를 파헤치는 이론’이다.

먼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을 중심으로, 허구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여성의 노동에 미치고 있는 영향과 코로나19 가중되는 돌봄노동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의 페미니즘과 펜데믹 시대에서 사회가 품지 못했던 상황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젠더란

페미니즘에서 젠더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들이 젠더 체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령 탄생과 함께 남성 또는 여성으로 주민등록번호가 구별 지어지고, 죽음 앞에서도 성별이분법적으로, 살아오던 정체성과 다른 성별 재현으로 죽음을 마주한다. 간성은 간성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두 개의 성별 중 하나로 선택 지어진다. 또 흔히 면접에서 나이, 학력, 결혼여부, 애인유무, 가족형태 등을 묻는 말은 궁금증이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는 조건들로써 작동한다. 젠더는 “사회·문화적인 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회구조의 영향과 교육 및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각자가 남성과 여성이 된다는 사회구성주의 관점을 반영한 개념”1)이다.

 

섹스를 생물학적 성이라고 한다면, 젠더는 사회문화적인 성이다. 그러나 여기서 섹스는 단순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생물학적 성별규범”이라고 고쳐 이야기할 수 있다. 생물학적 성이라고 하는, 성별이 남성과 여성만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객관을 뒤집어쓴 만들어진 지식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섹스와 젠더 개념의 구분에 대해서 문제제기 할 수 있다. 섹스와 젠더를 구별하게 되었을 때 젠더는 사회구조의 산물로 문제 삼을 수 있으면서 섹스는 타고난 본성이라는 틀에서 질문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 섹스에도 사회구성주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인식에 동의한다. “생물학적인 지식 또한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결과적으로 섹스 또한 젠더라는 점에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는 것이다. “섹스는 사회적 법을 근간으로 하는 담론의 결과이며 따라서 사실상 젠더”3)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젠더 이분법의 해체를 주장하는 동시에 수행으로서의 젠더 개념을 제시”4)하였다. 젠더수행성 개념은 지정성별이 여성인 것을 이데올로기적인 탄생된 지식 안에서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성별규범 행동, 즉 수행성을 통해서 성별관계망으로 ‘변형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애중심주의는 젠더 강압성에 기반을 둔 수행일 수 있으며 젠더는 이 성별이분법 규범에 개입한다.


허구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과 코로나19 이후 여성의 돌봄노동

사회구성물인 젠더 개념 아래, 우리 삶에서의 ‘노동’을 젠더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한 문장에 드러난다. “근대사회의 성별분업은 남성-생계책임자, 여성-가사-양육책임자로 보고 ‘반찬값’ 또는 ‘용돈벌이’ 수준의 저임금 지불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성별분업은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5)
 

여성의 저임금 노동은 심각한 빈곤,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를 작동시키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실재하지 않는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여성을 남성의 의존자로 비추고, 이는 노동불안으로 이어지게 하며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품지 못한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앞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피해 사실이 있고도 왜 계속 일을 했냐’며 물을 수 있는 기저는 여성이 생계부양자이고 노동하는 주체라는 점이 현 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피해자책임을 묻는 2차 가해가 된다. 계속해서 경제의 위기가 ‘아버지의 위기’, ‘남성의 위기’로 재현된다면, 위기에 노출된 주변화된 사람들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차별과 어려움이 가속된다.
 

세계경제포럼 평가에서 2021년 기준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 성평등한 나라는 아이슬란드라고 한다. 인구수를 고려해야 하지만 성평등을 일군 역사에는 1975년 10월 25일 90% 여성이 동참한 여성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업 주부는 가사와 육아를 하지 않고 거리에 나왔다. 이때 ‘보이지 않던’ 여성의 노동이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위기’가 아니라 ‘여성의 위기’로 생산의 지위를 다르게 맞춰보는 일이 필요하다. 혹은 ‘아버지의 위기’가 아니라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질서’의 위기라고 가시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통계청 자료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성별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9년에 남성은 73.5%, 여성은 53.5%로 격차는 20%가 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8) 성인지통계에서 외국의 성별 경제활동 참여율을 보고 한국의 성별 격차를 비교하면, 한국의 성별 격차는 21.8%인 것에 비해 미국, 영국, 호주, 독일은 10% 내외를 웃돌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4%대다.
 

이 자료를 보았을 때 여성의 경제활동의 낮은 참가율을 확인 할 수 있고, 그 이유는 경력단절과 성차별로 이야기된다. 박옥주 교수에 따르면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제도와 문화로 인해 여성들은 노동 시장 진입부터 배제되거나 분리 채용되며, 진입 이후에는 저임금, 고용불안정, 승진 제한 등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노동의욕을 상실하거나 여성에게 강요되는 가족내 돌봄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때로는 경력단절을 겪기도 한다.”6)고 말한다.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 가정일을 하면 된다는 인식으로 해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제도와 문화다. 2016년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실린 대학원 면접 후기7)에는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여성이 지위를 갖는 일에서도 성차별적인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여성이 대학원 면접을 갔을 때 들어오자마자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하는 것은 물론, 결혼은 할 것인지, 결혼을 하는 여자들은 대학원 오는 남자랑 달리 애 낳고 뭐 하면 논문을 쓰기는커녕 수료도 안 한 채 사라지기도 한다고, 유학가도 뭐하고 살 것인지 꼬치 묻고 굶어죽을 거라고 악담을 하고 암담한 젠더 의식을 드러냈다.
 

성별 직종, 직무 분리로 인해 성차별은 여성의 노동 지위에 영향을 미치고 경력단절은 여성의 노동 지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일-가족 양립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저임금 노동, 비정규직 노동 일자리를 내어주면서 가정일도 하라는 역설의 ‘일-가정 양립’을 요구한다. 남성에게 ‘일-가정 양립’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여성은 가중된 노동 환경을 맞닥뜨렸다. 일-가정 양립에서 가정을 선택해야만 했다.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가 학교 등을 못 나가면 돌봄은 여성의 몫이 되도록 종용받는다. 그러면 경제지표에서 여성은 또 사라지게 된다. 2020년 5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코로나19와 젠더>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일시휴직자 증감 성별 비교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 넘게 일시휴직자가 되었고, 사업부진, 조업 중단 사유 일시휴직자는 전년도 대비 2020년, 남성은 10배 증가(329천명), 여성은 44배 증가(932천명) 추이를 보였다.
 

여성이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서 더 취약해지고, 돌봄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작동했다. 재택근무하는 여성은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노동을 한꺼번에 해야만 했다. 한부모가정일 경우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게 되면 수급 대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승진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도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키는 부분이다. 또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0대 여성의 고용이 0.9% 증가 폭을 보였다. 60대 여성 노동 인력이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고용이 증가한 것인데, 이는 감염 시대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고용이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돌봄의 공백을 확인했는데도, 돌봄노동이 필요한 생산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2021년 11월에 “가사/돌봄 사회화 공동선언문”이 나오고,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이 출범했다. 이 선언문에는 “노동의 위계화와 성별 분업 체계로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으며 “재난과 위기의 시대에 가사/돌봄의 혁명”이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가사/돌봄의 제공자이자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나긴 청춘> 책에서 여가 혁명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비노동 시간이 노동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더 빨리, 더 자주 컨디션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남성은 주로 여성으로부터 컨디션 회복을 위한 돌봄을 받는다. 일하고 온 아내가 밥도 하고 아이도 돌본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비노동 시간”이라고 칭할 수 있도록 가사/돌봄 사회화 공동선언문 말마따나 모두가 돌봄의 제공자이자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페미니즘, 기후위기 영향은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을 차별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기후위기와 페미니즘의 교차성은 기후위기가 여성에게 더 취약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젠더와 생태를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펜데믹 시대와 기후위기 시대가 있다면 기후위기는 펜데믹을 포괄한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감염병 창궐 이유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접촉이 많아지고 세계화를 야기한 자본의 움직임 때문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기후위기를 가속화할수록 감염병의 위험이 커진다. 그런 촘촘한 연결 아래 젠더와 생태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자연재난이 모두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1991년 4월 29일 방글라데시에서 초대형 사이클론이 있던 기후재난 사건에서 여성사망자가 남성사망자보다 42%가 많았다. 기후 재난에서 젠더 격차가 나타났다. “유엔개발계획은 자연재난으로 인한 여성과 아동이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게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에 내재된 성불평등한 문화 구조가 재난 상황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로 여겨져서 집에 있다가 대피 경보를 듣지 못하거나, 종교와 문화적 관습으로 긴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경우 수영이나 나무 오르기 등을 배우지 못해 이동의 제약을 받는다. 이동의 제약을 받는 이유가 관습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차별이 작용한다. 그리고 평소에 비상상황에서 남성보다 부실한 식단 때문에 달리기가 힘들거나 회복이 어렵다. “남녀 성의 가치를 불평등하게 따지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삶과 죽음의 ‘결정’에까지 깊숙이 배태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8)라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범람하는 강물에서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가 힘이 부쳤을 때 딸을 포기한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또 재난 후 취약해진 경제 상황에서는 여성과 아동이 젠더폭력이 증가하기도 한다. 젠더와 환경의 교차성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를 직면할 이유다.
 

젠더와 환경에 관한 다양한 페미니즘 연구를 하나의 의제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으로 에코페미니즘이 있다. 다양한 학자들의 정의 중에서 장우주 학자의 생태여성주의는 에코페미니즘을 “인간이 자연을 포함해 타자화 된 소수들을 의미 있는 타자로 여기면서 관계성을 재구성하는 공존과 상호관계성의 페미니즘”으로 설명한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추출주의에 기반한 파괴의 행위를 멈추고 인간과 자연 등 관계를 공존과 상호관계성으로 재구성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의 과거의 흐름은 초기 자유주의 관점, 문화적 생태여성주의, 사회구성주의 관점에서의 생태여성주의, 그리고 제3물결 페미니즘 등장과 후기구조주의 흐름 속에서 생태여성주의가 있다. 후기구조주의 흐름에서 생태여성주의는 환경문제가 젠더뿐만 아니라 민족, 연령, 빈곤, 장애, 동물 등과 어떻게 교차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권을 위한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아이와 반려동물을 함께 데리고 갈 쉼터가 없어서 집에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동물구호단체와 여성쉼터가 연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사례가 있다.
 

<다시 쓰는 여성학> 책의 “기후위기 시대, 페미니즘과 생태를 사유하기” 챕터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여성환경운동 흐름 속에서 모두를 위한 월경권, 대안먹거리운동, 플리스틱프리 운동이 젠더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했다. 여성들의 월경을 터부시하는 월경문화는 가부장제 사회의 젠더 위계 관계와 여성몸과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성차별적 성문화를 재생산해왔다. 월경 경험에 대한 지식은 사회적으로 축적되지 못했고, 생리대 사태 이전에는 생리대의 안전성 측면 위해성 검사가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안월경용품들이 이제야 이야기되고 있지만 장시간 노동자나 장애가 있는 경우 대안용품 접근이 어렵다는 과제가 있다.
 

대안먹거리운동에서는 세계무역기구가 수입농산품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면서 여성소농의 생계가 위협된다. 산업농 과정에서 종자권리가 기업독점화되고 여성농민의 토착적 기술과 씨앗관리는 사라지면서 식량주권을 위협받았다.
 

탈플라스틱 운동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특히 여성과 유아들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플라스틱프리운동은 소비하기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속도를 늦추고 나와 우리, 그리고 지구의 건강을 챙기는 여정이기도 했다.
 

생태와 젠더의 접점은 생활정치의 실천, 실천성을 띤다. 대안적 운동과 실천에 토대하여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여성들은 재해와 여성의 삶을 조사연구한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 책을 출간했는데, 재해마다 여성이 겪는 피해들이 반복되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여성의 관점으로 피해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재해대책을 이야기하는 실천지식이 모였다. 동일하지 않은 재해의 잔재를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결론적으로 돌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 김현미 교수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진실은 인간이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돌봄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9)라고 한다.
 

트론트는 돌봄 민주주의를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세상을 바로잡고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돌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 능력이고 그동안 무임승차 했던 돌봄을 사회화 해야 한다. 여성의 가사/육아 등 돌봄 뿐 아니라 그간 이윤과 생산에서 멀다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들도 돌봄노동으로 자리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결국 ‘상호 돌봄’, ‘함께 돌봄’, ‘상호의존성’, ‘취약성’인 것 같다. 율라비스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우리가 늘 서로의 환경이라고 했다. 면역의 관점에서 순수한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오염된 몸으로써 통제가 아닌 공존하는 삶의 기술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때 취약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피는 게 핵심이다.
 

삶이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으면서 지상에 있는 모든 이와 연결되어 있는데 지구의 자기조직화 시스템이 그러하다. 유목이 강에 휩쓸리는 것을 인간이 열심히 치웠지만 바다와 강에게는 그 유목이 삶의 터전이 된다. 바람이 불지 않는 정글의 버섯은 포자를 나를 수 없는데 자가 빛을 내어 곤충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곤충은 버섯의 포자를 나른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이 되는 것, 그리고 연결됨은 자연과 닮아있다. 우리가 건들이지 않은 자연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돌봄, 우리돌봄, 공동체돌봄, 지구돌봄으로 돌봄은 확장된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책임의 연대가 있다. 김지은 노동자와 성희롱을 공론화했던 조교가 미투하는 이유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런 폭력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공론화한다고 이야기 했다. 자기에서 끝내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구도 겪을 것이라는 것이라서 정의의 관점으로 문제로 알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이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이 빚이고, 하루하루도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
 

재생산 노동과 돌봄을 재평가 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상식을 만들어야 할 때다. 객관적인 지식이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지식도 중립적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성찰성이다. “성찰성(reflexivity)은 자신의 인식의 부분성과 불완정성을 인정하고, 인식주체가 놓인 사회적 조건과 상황이 기존의 차별, 불평등, 억압, 배제의 구조와 연관되는 방식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불완정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 인해서 다른 주변화된 삶에 다가가고 질문할 수 있게 한다. 합류적 사랑이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영원성과 유일무이한 특성을 가진 낭만적 사랑과 대조되면서 변화의 주체가 된 것도 여성이고 게이이고 레즈비언이었다. 이러한 변동은 성찰성에서 나올 수 있다.
 

세상의 지식을 재사유하면서 새로운 상식의 결과들을 보고싶다. 새로운 집단적인 상식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각주

1)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기획, <다시 쓰는 여성학>, 한국문화사, 2021, p.27
2)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기획, <다시 쓰는 여성학>, 한국문화사, 2021, p.29
3) 이현재 (2013). 섹스와 젠더. 여/성이론(29), 206-218
4)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기획, <다시 쓰는 여성학>, 한국문화사, 2021, p.29
5)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기획, <다시 쓰는 여성학>, 한국문화사, 2021, p.190
6)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기획, <다시 쓰는 여성학>, 한국문화사, 2021, p.193
7) 리외, “대학원 면접, ‘갑질’로 얼룩진 5분”, 2016-08-26 https://www.ildaro.com/7572
8) 조효제, <탄소 사회의 종말>, 21세기북스, 2020
9) 김현미,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휴머니스트, 2020

 

참고자료

“폭력·성범죄 무방비 노출에 거리서도 내쫓긴 여성 홈리스들…“성(性)인지 정책 필요”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208

코로나 시대, ‘자가격리’될 집이 없는 사람들은요?

https://www.ildaro.com/8766

긴급재난지원금, “돈보다 내가 잊혀지지 않았다는 게 좋았어”

https://www.ildaro.com/8953

박주연, “코로나19는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드러냈다”

https://www.ildaro.com/8735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나케북스



 


작성자 : 마공 / 작성일 : 2023.07.15 / 수정일 : 2023.07.17 / 조회수 : 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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