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생 무니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현안과이슈 / by 콜드브루 / 작성일 : 2023.08.12 / 수정일 : 2023.08.12

독자분들의 이번 한 주는 어떠셨나요? 비도 오고 유달리 날도 꿀꿀한 주말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한데...오늘은 집에서 편하게, 영화 한 편 보시는 거 어떨까요?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2018년 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입니다.


아름다운 영상미로 입소문을 타서 많은 분께서 이미 보셨을 터인데요.

 

 
출처: 다음영화


이 영화를 "아동권리"의 시각에서 다시 파헤쳐 보았습니다.
주제를 한정하고 나니 처음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요소와 장치들이 보이더라고요.


각설하고, 영화 속 이야기 살펴 보실까요?


 

출처: Flaticon-Freepik



'플로리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야구팀이나 농구팀? 

 

MLB 소속 야구팀 플로리다 말린스



뜨거운 태양과 야자수?

 

출처: NPR


네, 다 맞습니다. 이 외에도 디즈니월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동시에 보유한, 최고의 관광도시죠. "은퇴자들의 천국"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만큼 매력 넘치는, 역동적인 도시입니다. 영화 역시 2명의 주인공, "매직캐슬"의 골목대장 무니와 그녀의 엄마 헬라를 중심으로 매력 넘치게, 역동적으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디즈니 테마파크의 건립 사업의 명칭(1967), 또 다른 하나는 노숙인 지원정책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마찬가지로 영화 속 세계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문자 그대로의 "Magic Castle"이기도, 또는 하루하루가 힘겨운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의 냉혹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출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Scroll.In에서 재가공


무니는 악동입니다. 사람들의 차에 침을 뱉거나, 버려진 건물에서 불장난하는 등 소위 말하는 '선 넘는' 행동을 친구들과 일삼죠. 하지만 이런 꼬마 아가씨의 행동이 밉게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 한 쪽도 나눠 먹고, 엄마와 바비 아저씨를 끔찍하게 아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섯 살 아이죠.

 

또 다른 주인공, 바비 아저씨와 핼리
출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Buzzfeed에서 재가공


또 다른 한 축, 핼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요? 부당해고를 당하고,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합니다. 복지 혜택을 받으러 사회복지기관에 찾아가지만,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좌절하고 포기하기보다 무니를 지키기 위해 일용직 일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버티는 삶을 이어갑니다. 굳세 보이던 그녀도 작품 후반부, 코너에 몰리자 살고 있던 모텔에서 매춘을 하고 도둑질하는 등 범죄에 손을 대고 맙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동정책국 직원들의 눈에 핼리는 엄마 자격 없는 범죄자일 뿐입니다.

결국, 엄마와 헤어져야 위탁가정으로 떠나야만 하는 무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신은 엄마와 친구와 함께 있을 거라고 선언합니다. 직원들을 피해 도망쳐 나온 그녀가 친구와 디즈니랜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감독의 사심(?)이 잔뜩 담긴 영화 구성

자칫 보면 어둡게만 보이는 불안한 현실. 영화는 이 모든 일상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냉혹하고 아슬아슬한, 범죄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을 맥락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화려한 색감, 장면 전환, 음악 등을 활용하여 억지 연민이나 동정이 자리할 틈을 주지 않죠. 그저 해맑은 무니와 그녀 주변인들을 담담히 소개하는 듯합니다.

 



화려한 색감이 돋보인다.
출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인물 뒷모습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식 촬영 기법도 이러한 인상에 힘을 실어줍니다. 베이커 감독은 "영화가 사실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관객이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그런 화면 구성을 연출했다"고 설명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종종 아동은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연출자의 입장에 따라 아동의 이미지가 왜곡된 채로 소비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감독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3년간 디즈니 모텔촌을 발로 뛰며 취재해 스토리라인을 만들었죠. 영화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바비' 아저씨도 실재 인물을 토대로 탄생했습니다.

 

출처: 영화 공식 예고편


비전문 배우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촬영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무니는 오디션으로, 무니의 단짝 젠시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했습니다. 스쿠디는 실제 모텔촌에 사는 소년이었요. 핼리는 SNS에서 발탁한, 영화 개봉 직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감독은 "유명 배우가 연기하면 사실감이 떨어져 몰입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고 밝히면서 캐스팅 비화를 이야기했는데요. 일상을 객관적으로 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을 영화 내/외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기했듯,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해석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죠. 그녀들에게 "무지개 넘어"의 행복한 삶은 정녕 없는 걸까요? 희망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스쿠티 역을 맡은 리베라는 지역 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핼리와 무니 역시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없습니다. 그녀들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실제로 작품을 이끌었던 감독도, 영화 속 인물들도, 그리고 영화 밖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들은 계속해서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겁니다. 늘 그러했듯이, 때론 넘어지고, 깨지기도 하면서요!



 

아동의 시선으로 영화 다시 보기

영화 속 이야기를 무니의 시각에서 다시 봅시다. 현실은 핼리를 무니와 분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녀들의 행복추구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핼리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좋은 엄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니의 의견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반영되지 못하는 걸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게 온전히 핼리 개인의 책임인가요?

영화는 무분별한 대출과 허술한 신용평가로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로 노숙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정부와 금융권이 일으킨 경제난의 피해는 회복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소득층으로 고스란히 전가되었습니다. 무니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를 뺏겼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무니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죠. 영화 속 세상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와 관련해 감독은,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삶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에 반드시 담으려 한다. 제가 만든 영화가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라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이제 막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신진감독이지만, 미국에선 독립영화계를 이끌 젊은 대가로 불립니다. "탠저린","스타렛"등 그의 영화들은 홈리스, 싱글맘, 트랜스잰더, 성매매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 눈길을 두고 있습니다.


영화와 아동 권리,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감독은 자신의 가치관을 소박하면서도 담대하게 렌즈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처럼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우리 각자만의 세상을 보는 눈, '렌즈'가 있죠. 우리도 우리만의 렌즈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마치며: 아동권리협약과 아동 권리

1989년 유엔(UN)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를 가진 주체로 명시하며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 등 아동의 기본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96개국(2019년 기준)이 비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30여 년간 아동 인권 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출처: UNICEF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기본교육에서 배제된 2억 5천만 명의 아이들이, 원치 않는 조혼을 강요받는 6억 5천만 명의 아이들이,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누리지 못하는 전 세계 25%의 아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유니세프). 그들은 타자, 세상 물정 모르는, 연약한 존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일부이며 다음 세대의 주역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제2의 핼리, 무니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달라는 사랑스러운 주인공 무니의 수상소감으로 오늘의 큐레이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문헌
세이브더칠드런. (2019). [아동권리영화제 인터뷰③ - 김혜리 기자] 늘 연약한 희생자로만 비치는 아이들이 발언권을 얻는다면?. https://www.sc.or.kr/news/storyView.do?NO=70334
시사인 김세윤 칼럼니스트. (2018). 가난을 과장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40
​연합뉴스 서민경 기자. (2022). "전 세계 어린이 2억 2천만 명, '전쟁·재난'으로 교육중단". http://www.ikbc.co.kr/article/view/kbc202209190031
허핑턴포스트 김태우, 윤인경 기자. (2018). [허프인터뷰]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는 월세만 밀리지 않는다면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67855
UNICEF. (2021). The States of the World's Children 2021: On My Mind: Promoting, protecting and caring for children’s mental health. ​https://www.unicef.org/reports/state-worlds-children-2021






작성자 : 콜드브루 / 작성일 : 2023.08.12 / 수정일 : 2023.08.12 / 조회수 : 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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