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가 제가 생각하는 그 예비비인가요?
현안과이슈 / by 박배민/유랑 / 작성일 : 2023.11.27 / 수정일 : 2023.12.08

(​이 글은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기고한 글을 옮겨온 것이에요!)


🔎 15분이면 다 읽을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실천하는 시민'의 조력자, 박배민 큐레이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예비비'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려고 해요. 우리가 생활하다 보면 혹시 모를 일(아프다거나, 경조사가 겹치는 등)을 대비해서 비상금 통장을 만들어 두잖아요. 나라에서 비슷한 용도로 만들어 둔 돈이 ‘예비비'인데요. 코로나19나 태풍처럼 예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크게 올 때도 있고, 나라에서도 일을 하다 보면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사업이 새로 생기거나,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이라도 예상치 못 하게 규모를 늘리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요.  이럴 때 활용하는 게 '예비비'입니다. 올해 8월에 난리 난 '잼버리 사태' 아시죠? 준비와 운영 미흡으로 연신 뉴스에 나왔었잖아요. 이때 사태 진정을 위해 투입된 돈이 예비비였어요.

 

 

 

 

예비비를 쓰는 방법

예비비는 각 부처에서 얼마 필요한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 등의 내용을 담은 명세서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함으로써 사용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어요. 대규모 재난처럼 사안의 처리가 우선일 때는 필요 금액을 정확히 계산하지 못해도 일단 ‘대충'해서 올릴 수도 있어요.

 

 

예비비 사용 요청을 받은 기재부 장관은 우선 정말 필요한지 판단한 후에 정말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예비비사용계획명세서'라는 걸 작성합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기재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이 명세서를 토대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좋아 진행시켜!' 라고 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시 세출예산으로 예비비를 배정하고, 각 부처는 예비비를 사용한 후에는 ‘예비비사용명세서'를 작성해서 24년 2월 말까지 기획재정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모인 여러 장의 예비비사용명세서를 종합한 ‘총괄명세서’를 대통령과 감사원에도 제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국회에도 보고 해야 하는데(24년 5월 31일까지), 지난번 “예산 쉽게 읽기 - 우리나라 예산은 어떻게 편성되는 거지?”에서도 살펴보았듯 예산 확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에요. 예비비라는 항목 자체는 사전에 국회로부터 승인받았지만, 그 내용은 확정된 게 없었기 때문에, 국회에 후 보고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해볼게요. 회비를 걷어서 예산을 짤 때 '기타'나 '예비'로 어느 정도 금액을 잡아두잖아요. 그 비용이 어디에 쓰일지는 몰라도요.  그리고 나서 여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나가는 비용을 예비비로 처리하고, 나중에 친구들에게 사용처를 공유해주잖아요. 스케일만 다르지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예비비 사용 흐름을 단계 별로 정리해 보면 이런 느낌이에요.

각 부처 “저 예상치 못 한 일이 생겨서 이 정도 돈이 추가로 필요해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 명세서 봐주세요.”

기재부의 예비비사용계획명세서 “어디 어디에서 이 정도 돈이 필요하다는데, 제가 보기에도 필요해요. 대통령님 승인해주세요"

국무회의 & 대통령 “OK, 승인해줄게. 대신 쓰고 나서 보고해야 한다?”

부처①의 예비비사용명세서 “보내주신 예비비 이렇게 썼어요. 확인해주세요"

부처②의 예비비사용명세서 “저희는 이렇게 썼는데요. 검토해주세요"

기획재정부의 총괄명세서 “제가 보니까 다들 이렇게 썼더라고요.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보고 결재해주세요"

대통령 “음. 괜찮은 것 같아. OK~ 아 맞다, 근데 감사원이랑 국회에도 보고하는 거 잊지 않았지?”

 

 

예비비니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요?

예비비도 우리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돈! 당연히 편한 대로 사용할 수는 없겠죠?  이번에 정부가 짠 24년 예산안을 보면 예비비 총 규모는 5조 원이고, 그 중 3조 원은 용도가 명확히 정해져 있답니다. (재정 총칙 제12, 13조)

 

 

여기서 이해가 빠른 분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어? 그럼 남은 2조 원은 용도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거 아닌가? 예비비를 무조건 크게 잡으면 널널하게 쓸 수 있겠는데?'라고요. 맞아요! 그런 방안이 생길 수도 있죠. 그래서 국가재정법에서는 예비비는  무한대로 설정할 수 없도록, 전체 예산의 1% 이내로 편성하게끔 정해 놓고 있어요. 예비비를 크게 잡아서 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게 위함이죠.

 

예비비, 잘 쓰이고 있을까요?

예비비가 무엇인지 봤고, 어떤 절차로 사용되는지 알아 보았어요.  그럼 이론에서 벗아나 잠시 현실을 열어 볼까요? 예비비로 최근 뜨거운 감자는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에요.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위해 예비비 329억을 끌어 와서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단순히 예비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은 아니에요. 당초 잡혀 있던 순방 외교 예산은 249억 원이었는데, 대통령실은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인 329억을 예비비로 추가 승인했기 때문이에요. 원래 있던 예산보다 초과해서 사용할 만큼 시급한 사안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정상외교 실적이 있었느냐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 의견도 있고요.

 

추가로 편성된 329억 원 안에 있는 국외업무여비, 사업추진비, 특수활동비도 증액이 되었어요. 외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후 승인이 원칙’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증액 금액을 밝힐 수 없다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이 부분도 논란이 되고 있어요.

 

 

 

지자체의 경우, 인천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뉴스1, "인천시, 예비비 초과 편성했는데 집행은 저조…법 위반" ) 인천시는 2020년부터 23년까지 기준치인 1%를 초과해서 예비비를 편성하고도, 4년 동안 집행률이 가장 낮게는 2.4%, 가장 높게는 겨우 14.8%에 그치고 있어요. 이게 문제되는 이유는 예비비가 남을 경우, 이 금액을 ‘순세계잉여금(쉽게 말하면, 이거 빼고 저거 빼고 남은 내 여유 자금!)'으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되면 지자체로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는 셈이죠?
 

지자체가 금고가 풍족해지면 좋은 게 아닌가, 하고 판단이 잘 안 설 수도 있는데요. 이건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주민과 우리 지역을 위해서 쓰여야 할 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잘 써달라고 내는 건데, 이게 그대로 지자체의 여유 자금으로만 남는다? 균형재정의 원칙에 맞지 않고,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순세계잉여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나라살림연구소의 이상민 님께서 잘 설명해주신 글을 참고해보세요. (#)

 

 

 

대구광역시도 저조한 사용률이 눈에 띄어요. 행정안전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 동안, 대구시는 재난 예비비로 80억 원을 편성했어요. 그런데 실제 집행액은 13% 정도인 10억 6000만 원에 불과했어요. 더군다나 태풍 ‘힌남노'가 강타한 2022년에는 재난 예비비가 1원도 집행되지 않아 여러 질타를 받고 있어요.

 

나오며

정부의 '예비비'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긴급한 필요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예요. 그러나 식칼처럼 잘 쓰면 좋은 요리 도구, 나쁘게 쓰면 흉기가 되는 것처럼 예비비라는 이 도구도 올바르게, 책임감 있게 사용되어야 해요. 예비비의 사용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국민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정부의 재정 운영을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예비비는 국가의 안정성을 위한 보험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작성자 : 박배민/유랑 / 작성일 : 2023.11.27 / 수정일 : 2023.12.08 / 조회수 :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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