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2. 내가 먹는 먹거리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3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멀리 보낼 수 있도록


"뿌리엔 감자가 열리고 줄기엔 토마토가 열려요.

한 번에 두 가지 식물을 키워낼 수 있으니 굶주린 사람들이 줄어들 수 있어요."


1980년대 어린이 과학잡지에 실린 유전공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전자조작이 가져오는 생명윤리에 대한 인식은 뒤로하고,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내기를 바란 사람들은 유전자조작이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한 작물에서 감자가 열리고 토마토가 열리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일까요? '더 빨리, 더 많이, 더 멀리' 유전자조작작물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선은 마치 올림픽 구호와 같았습니다. 


 


 

1990년대부터 농산물과 식품은 먹거리를 넘어선 상품으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농산물이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유럽에서는 무르지 않는 토마토가 판매되었습니다. 유전자조작을 통해서 토마토의 상품성을 높인 것인데요. 토마토를 더 많이 팔고, 더 멀리 보내고,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토마토 고유의 특성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거대한 농산물 기업이 유전자조작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농민들이 피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상륙한 유전자조작작물 

 

한국은 대량의 유전자조작작물이 들어오지 않아 1990년대 중반까지 안전지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던 씨 없는 수박이나 방울토마토는 유전자조작작물이 아닌 전통적인 '육종재배방식'입니다. 육종재배란 비슷한 종류의 작물들을 교배시켜 그중에 살아남는 것을 계속 길러내면서 종자를 개량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절하긴 하지만 결국 '자연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작물은 사람이 작물에 DNA를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전통방식의 종자개량은 비슷한 품종의 특성을 유지한 채 생태계에 적응하길 기다려야 하지만 유전자조작은 완전히 종의 경계를 허물어 버릴 수 있습니다. 감자에 토마토가 열리고 배추에서 벼가 자라는 등 생태계의 법칙을 인간의 의지로 다 뒤집어엎을 수 있습니다. 

외국의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한국에도 이미 유전자조작작물이 상륙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조작작물 문제가 화두에 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 큰 호응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1997년 처음으로 '생명공학의 올바른 방향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토론회'가 열렸지만 시민들의 유전자조작작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환경단체와 농업 관련 단체, 소비자단체들이 소리를 내었지만 유전자조작작물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그쳤습니다. 1998년 5월 말에는 '생명공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실무자 모임'이 결성되었고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전자조작작물로부터 식탁을 지키기 위한 노력]



1998년, 인천항에서 밝혀진 콩의 이름

1998년 11월 12일, 인천항에 한국수입허가를 기다리고 있던 배가 있었습니다. 젊은 활동가들이 달려가 검사를 위해 콩 30알을 걷어옵니다. 선적지에서 농업과학기술원이 콩 30알을 검사한 결과 9알의 콩이 라운드업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품종인 게 확인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이미 카길(Cargill)사가 한국에 유전자조작콩을 수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8월 카길사에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콩의 30%와 옥수수의 25%가 유전자조작곡물이며 수출과 가공도 같은 비율로 이루어진다"라고 말이죠. 이 취재는 11월 정기국회에서 언급되며 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전자조작작물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소비자의 맛과 영양을 위해서 품종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산과 가공이 쉽도록 개발한 것이며 이는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전자조작작물을 반대한 이유는 예기치 않은 독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고 유전자조작작물에 이식된 유전자는 바람을 타고 다른 곳으로 쉽게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1998년 유전자조작 미국 농산물 수입 반대시위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사람이 인위적으로 생태계와 자연을 바꿔낼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었을 때, 인류가 어떤 일을 걷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작물에서 시작된 조작은 결국 움직이는 동물에게도 적용되고 최후에는 인류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죠. 

시민단체들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유전자조작콩이 이 땅에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캠페인과 거리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GMO 콩을 실은 싱가폴국적의 앰버호는 1998년 12월 6일 인천항 5부두에 입항해 하역했습니다. 인천환경운동연합 등의 환경소비자단체들은 농수산물유통공사 인천지소와 인천항 제3부두 앞에서 유전자조작콩 수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유통금지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표시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콩은 항만에 내려져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기업의 영업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항의가 지속되자 1999년에는 농림부에서 '유전자변형농산물 표시제 조항'을 만듭니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도 GMO 반대운동에 합류하면서 유전자변형작물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됩니다. 그러나 정부는 WTO 가입 등으로 국가 간의 무역마찰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며 표시제를 자꾸 미뤘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과 시민, 소비자, 언론들이 전폭적으로 GMO 반대에 나서면서 2001년부터 유전자조작작물에 대한 표시제를 실시하기에 이릅니다. 

풀무원은 유전자조작콩으로 두부를 만든다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조사 결과 일부 제품에 유전자조작콩이 섞여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고 풀무원은 2008년 10월 모든 제품에 GMO 작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패스트푸드업체인 KFC도 유전자조작작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네슬레는 한국 상황에서 GMO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2016년 9월까지 정부는 기업의 영업 비밀을 보호한다며 GMO 농산물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과 환경단체, 소비자단체들은 연대하여 식약처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끌어갔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또는 식품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식약처의 공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CJ는 341만 톤, 대상은 236만 톤, 사조해표 177만 톤, 삼양사 172만 톤, 인그리디언코리아는 140만 톤으로 전체 식용 GMO 농산물을 수입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기업이 모두, 국내 식용 GMO 수입농산물의 99.99%를 수입했습니다.

 
2016년 GMO 완전표시제 지지서명에 대한 기자회견
(출처 :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실련은 각 기업체에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이 농산물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밝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제지, 공업용품으로 사용하며 동물 사료용으로 생산하고 있고 다시 수출을 하기도 한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요? 2001년에 처음 마련된 GMO 표시제는 여러 가지 조건이 걸려있어 GMO 농산물이 식품에 들어간 것을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공해서 만들어도 괜찮고 3% 이하면 넣어도 괜찮고, GMO DNA가 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입하는 식품에서 GMO 표시를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내 밥상을 선택할 시민의 권리  

시민단체과 시민들은 지금도 GMO 완전표시제를 요구하며 청와대 청원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12월, 인천항에서 도착한 다국적기업의 GMO 콩이 공식적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만, 아직까지 GMO 작물이 우리나라 어디에서 누구의 식탁에 오르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018년 GMO 완전표시제 대통령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
(출처 : 경제정의실천연합)

작은 식당에서도 김치와 쌀의 원산지를 공개하도록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천 톤의 유전자조작작물을 들여오는 대기업은 자신들이 만든 식품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려주지 않습니다. GMO 완전표시제가 이루어지면 정보에 취약한 사람들도 GMO 식품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됩니다. GMO 작물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시민들에게 돌아갑니다. 내가 먹을 식품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게 됩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거리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 시민사회단체들이 GMO 표시제를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이유입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경제정의실천연합 윤철한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참고자료
- 국내외 GMO 반대운동에 대한 고찰 및 전망 (2011, 허남혁,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 Anti-GMO 운동의 국제적인 동향과 국내상황 (2008,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 ​GMO 완전표시제에 대한 정보 : https://goo.gl/1f9kLu
​ 식품완전표시제 캠페인(아이쿱생협) : http://icoop.coop/?cat=11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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