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9. 두면 고물, 주면 보물! 아나바다 이야기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3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나눠 쓰는 가게의 시작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습니다. 금리는 낮았으며 경제성장은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물건을 사들였습니다. 기업들도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해 쏟아냈습니다. 소비 과잉의 시대, 화려하게 포장된 물건들이 소비자를 현혹했고 필요 없어도 사고 싶으면 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돈이 돌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과소비가 미덕이 되는 사회는 이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과잉소비로 썩지 않는 물건들이 버려졌습니다. 한쪽에서는 먹다가 버리고 한쪽에서는 굶주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물건을 사들이는 습관은 수십 년 내 여러 가지 복잡한 부작용을 일으킬 게 뻔했습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시민들이 재사용, 재활용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캠페인을 펼칩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아나바다. 기업의 과잉생산, 소비자들의 과잉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도 동참했습니다.
1993년 경실련 알뜰가게에 관한 동아일보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올림픽이 끝난 지 3년 만에 경제정의실천연합은 1991년 서울 신당동에 작은 가게를 냅니다. 경실련 알뜰가게라는 간판을 걸고 재사용나눔터를 만듭니다. 경실련은 쓰지 않는 장난감, 옷, 책, 주방기구, 신발 등의 생활용품을 일반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아 싼값에 팔고 이 수익금을 소외계층 돕기, 경제정의실천을 위한 시민활동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초기 사회적 경제의 모델 역할을 했던 정농생활협동조합의 물건도 팔았습니다.
과소비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실련 알뜰가게는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습니다. 하루에만 3~4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1년 만에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경실련 알뜰가게를 시작으로 많은 시민사회의 단체들이 재사용나눔가게를 오픈합니다.
[우리나라 재사용 나눔가게의 시작]
소비자운동을 전개해온 서울 YMCA는 소비자 참여운동의 하나로 녹색가게를 시작합니다. 재활용 캠페인을 벌이고 가끔 바자회를 했던 것을 시작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1996년 처음 과천시에 매장을 낸 이후, 1997년에 녹색가게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작은 매장을 열고 정기장터를 개최하게 됩니다.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친 경제 한파, IMF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녹색가게를 비롯한 재활용시장이 활성화됩니다.
1996년에 문을 연 과천 녹색가게의 모습 (사진 : 김순영)
녹색가게는 재활용품을 팔아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사들이는 물건이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해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장바구니 들기 캠페인, 일회용품 줄이기, 교복 물려주기로 점차 운동을 확대해나갔습니다.
아름다운 가게의 실험
누군가 버리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물건이라는 메시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탐욕으로 멍들어가는 지구와 자연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도한 소비는 결국 소비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쓰레기와 회복할 수 없는 자연으로 앙갚음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눔가게 운동은 정부와 공기관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국의 주민자치센터와 복지관들이 아나바다 장터, 재활용 재사용 장터를 열기 시작합니다.
2002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안국역 앞에서 좌판을 깔고 나눔 장터를 시작합니다. 참여연대의 나눔장터는 기존의 재사용나눔가게의 역할에 한 가지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바로 '비영리 기관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기부나 모금을 통한 것도 좋지만, 과연 비영리 기관이 자립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비영리 기관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는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비영리 기관은 공익목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행위를 통해 이익을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직원들의 인건비만 충당합니다. 하지만,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 납부만으로는 더 많은 공익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비영리 기관이 돈을 벌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2011년 아름다운가게의 광고물
참여연대 대안사업팀은 일종의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매달 장터를 열다가 2002년 아름다운 가게 1호점을 냅니다. 이 가게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유경제 플랫폼의 초기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물품을 깨끗이 정리해 판매하고 사회적 경제 영역의 기업 제품도 들여놓습니다. 장사를 통해 수익을 만들고 이 돈을 모아 공익활동 기금의 종잣돈을 마련합니다. 아름다운 가게는 2017년 현재까지 전국 111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연대로부터 분리독립하여 독자적인 사회혁신 모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름다운가게가 벌어들인 수익금은 계획대로 공익활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는 뷰티풀펠로우, 나눔 교육, 나눔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공익사업을 펼치며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기금을 지원하고 사람들의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전국으로 퍼져나간 공유와 나눔
전국의 재사용나눔가게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우고 생활문화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굳이 공익 단체를 통하지 않아도 많은 시민들이 중고장터와 재활용나눔을 거리낌 없이 실천합니다. 중소도시에서는 정기적으로 모든 시민에게 개방하는 중고장터를 공원에서 열기도 합니다. 기관과 단체에서 바자회를 여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문화는 지역의 공동체 운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2016년 YMCA의 되살림 녹색가게
(사진 : 이하나)
알뜰교환장터는 경제적 이익과 환경오염 예방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서로 공유하고 나눠쓸 수 있다는 인식 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어린이들도 벼룩시장을 열어 자기가 쓰던 장난감을 마을의 동생들에게 나누어주며 경제의 기초를 배워나갑니다. 또한, 교복 물려입기 운동이 나눔가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교복 물려입기는 교복은행으로 확대되었고, 졸업생들과 몸집이 달라져 교복을 못 입게 된 학생들이 나눔가게를 통해 주고받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 지자체에서 나눔가게의 모델을 기초로 면접을 보는 청년들에게 정장을 빌려주는 청년옷장, 열린옷장을 운영하고 신학기에 교복은행 행사를 주최하기도 합니다.
나눔장터에서 지역공동체와 풀뿌리 운동으로
재사용나눔가게는 이제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의 곳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무인점포로 운영하거나 동주민센터의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웃의 물건을 나눠 쓰는 것만으로도, 내 곁에 항상 누군가 있다는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나눔가게는 더 널리 확산되어 비영리 기관만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와 개인 단위에서의 나눔도 활발해져야 합니다.
재사용뿐 아니라 재활용도 결합하고, 재활용 물품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아져야 합니다.
2018년 동주민센터에 비치된 재사용나눔 물건 (사진 : 이하나)
예로부터 장터는 물건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나누고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무형의 자산까지도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환경을 아끼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구는 이미 기업들이 만들어낸 물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적절한 생산, 바람직한 소비만이 지속가능한 삶을 일궈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는 삶을 위한 기본을 지킬 때, 경제주권을 회복하고 지역의 경제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곳을 지키는 일. 바로 재사용나눔입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김순영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4367
코멘트를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