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06. '위안부' 할머님들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09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아픔을 공유한 두 여자의 만남


1943년, 이화여전 1학년 학생들은 학교 건물 본관 지하 염색교실에 모여 빽빽하게 인쇄된 서약서에 양쪽 엄지손가락 지장을 찍었습니다. 일본인들의 강요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1학년이던 윤정옥은 부모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두어라.”


윤정옥의 부모님은 ‘처녀 공출’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딸이 낯선 곳으로 끌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기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멀리 피난을 갔습니다. 그 시기에는 학도병과 강제징용이 많았습니다. 또래들은 어디론가 끌려갔고 또 사라졌습니다. 해방이 되고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윤정옥은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그때 끌려간 여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975년, 일본의 영토가 된 오키나와에 한 한국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1914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故배봉기 할머니입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의 출입국 정책 때문에 추방당할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에 살게 된 사연을 말하게 됩니다. 할머니의 사연은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요. 배봉기 할머니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임을 밝힌 첫 번째 사람입니다.




2017년 광복절을 맞아 151번 서울시내버스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198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사회적 책임감을 가졌던 윤정옥 교수는 배봉기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윤정옥 교수는 그 시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수차례 거절 끝에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윤정옥 교수는 그때부터 태평양 전쟁 당시 끌려갔던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1988년, 드디어 그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게 됩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여성학자 이효재, 한국교회여성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을 결성합니다. 이 여성단체들이 민족적 문제를 넘어 반인륜적 폭력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퍼스트펭귄들입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할머님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



용기를 내어 세상에 아픔을 이야기한 사람들

1991년, 단체들은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을 이끌어냅니다. 윤정옥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지 3년 만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저는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단단히 결심했어요.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엔 나오게 됐어요.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칠십이 다 됐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아. 근데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이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그때 그 사람에게….”



끌려감, 故 김순덕 (1921-2004)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238명의 할머니가 피해자로 신고하였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와 다른 두 명의 피해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으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던 일본 정부도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1993년, 조사가 끝났다며 당시 관방 장관의 이름을 딴 ‘고노 담화’가 발표됩니다. 부분 인정,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비치는 듯했지만, 국가의 책임은 민간업자에게 떠넘겼습니다.

2년 후, 일본은 일본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합니다. 정부의 반성과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위로를 담은 인도적 차원의 의미를 전한 것이죠. 일본 국민을 포함한 한국, 대만, 필리핀의 피해 여성 258명에게 기금을 전달하고 정부의 책임을 다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위로하고

이제 모두 할머니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와 시민강좌, 교육기관에서 증언과 강연을 시작했는데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이끌었고, 그해 12월 유럽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했습니다.

또한 일본군에 대한 피해를 넘어 미군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들을 격려하고,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에서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할머니들의 움직임은 단지 ‘나의 피해를 보상하라’의 차원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과 인권 유린에 대한 항거입니다. 


201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나비기금’을 제안합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차별,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세계 각지의 전쟁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지원과 연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수요시위의 한 장면 (사진 : 신권화정)

소통 없는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의 힘


2015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외교부 장관을 서울에 보냅니다. 우리 피해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한다’고 발표합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이 아닌,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세우고 일본 정부가 주는 10억 엔(100억)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에는 앞으로 국제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고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 : 신권화정)

많은 시민들이 이 합의를 반대했고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고, 뜻을 달리하는 시민들의 욕설과 소녀상에 대한 망치 테러도 있었지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다시 수요일을 지키기 위해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 남녀불문 국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할 때 썼던 이름입니다. 위안부는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성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피해자의 삶을 표현하기 적당한 말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일본군 문서에서 직접 사용한 말인 ‘위안부’를 쓰되, 작은따옴표로 감싸고 “일본군 ‘위안부’”라고 쓰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로 표기합니다.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 그리고 이 반인륜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연대는 26년간 천 삼백 번이 넘는 수요일을 버텼습니다. 집회는 일시적인 것을 말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를 항의한다는 의미가 더 많은 “수요시위”를 정식 명칭으로 씁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나비가 되어 이 한 많은 땅을 떠나고 2018년, 지금 스물일곱 분이 남았습니다. 민족과 개인의 불행을 넘어, 세상에 고통받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피해자들을 위해,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수요일을 지킵니다. 전쟁이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의 퍼스트펭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일을 지킬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수요일을 지켜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사)시민 신권화정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 http://womenandwarmuseum.net
정의기억연대 서명 참여하기 : http://womenandw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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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09, 조회수 :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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